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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이른 아침, 동대문역 1번 출구로 걸어나가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은색 외피가 낮은 햇빛을 받아 얇게 반사되고 있었다. 이 시간의 DDP는 도시의 소음이 채 올라오기 전의 차분함을 품고 있었다. 곡선으로 이어진 건축물의 루프톱을 직접 걷는 투어는 아래서 올려다보는 DDP와 전혀 다른 감각을 준다. 건축의 ‘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등 위’를 걸으며 서울의 지형과 시간을 읽는 경험이다.
출발 지점은 뮤지엄 4층 둘레길 라운지다. 참가자들은 체크인 후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는다. 헬멧을 머리에 맞춰 조이고 팔찌형 안전장비를 손목에 채우는 순간, 이 산책이 일반적인 전망대 체험과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루프톱은 최대 30m 높이에서 곡선 구조로 이어져 있어 모든 참가자는 난간 라인에 장비를 연결한 채 이동해야 한다. 프로그램은 오전 11시와 오후 1시 30분(영어), 오후 3시 30분 총 세 차례 운영한다.
루프톱에 발을 디디면 DDP의 건축적 성격이 곧바로 드러난다. 바닥은 완전히 평평하지 않고 걸음마다 아주 미묘하게 기울기가 달라진다. 건물의 흐름을 따라 몸이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꾸게 되는 구조다. 잔디언덕 구간으로 이어지면 금속 외피와 잔디가 부드럽게 접합되는 지점이 나타난다. 건물이 땅 위에 놓인 것이 아니라 땅이 건물을 감싸고 올라온 듯한 지형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도시와 자연이 맞닿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파노라마 구간에 서면 서울의 지형이 선명해진다. 왼쪽으로 남산, 정면에 을지로 골목의 빽빽한 구조, 오른쪽으로 낙산이 부드러운 능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건물 위에 올랐을 뿐인데 도시의 큰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울의 골격이 지도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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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구간은 도시의 시간이 겹쳐지는 자리다. 동대문운동장의 조명 두 기가 근현대의 흔적을 전하고, 그 아래에는 조선시대 한양도성과 이간수문, 하도감 터가 층층이 잠들어 있다. DDP의 루프톱은 이 시간의 퇴적층 바로 위를 통과. ‘발견된 서울’과 ‘새로운 서울’을 같은 높이에서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다.
패션타운을 내려다보는 구간에 들어서면 도시의 동력이 조용히 들린다. 평화시장과 밀리오레, 두타 일대에서는 점포 문을 여는 소리, 원단을 옮기는 바퀴 소리, 샘플을 들고 오가는 디자이너들의 움직임이 이어지는 듯 하다. 화려한 간판보다 이러한 작은 생활의 리듬이 동대문을 움직이는 실제 힘이라는 사실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더 뚜렷하게 보인다.
루프톱 최상부에서는 건축의 선과 재질이 다시 드러난다. 밤에는 조명이 곡선을 따라 흐르며 건축의 감각을 강조하지만, 오전의 루프톱은 건물 자체의 형태가 더 선명하게 읽힌다. 햇빛이 금속 표면을 타고 이동하며 건축의 구조적 논리를 천천히 드러낸다.
DDP 루프톱 투어는 단순히 서울을 내려다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지형과 역사, 산업과 건축이 하나의 동선에서 연결되며 도시를 입체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과정이다. 아쉽게도 올해 프로그램은 11월을 끝으로 운영을 마쳤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올해 참가자 만족도와 현장을 기반으로 내년에는 동선과 체험 콘텐츠를 확장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 해를 마무리한 루프톱 위의 산책은 내년, 더 깊어진 형태로 다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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