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연출 "무대는 선량한 집, 편히 놀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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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연출 "무대는 선량한 집, 편히 놀다 가세요"

이데일리 2025-11-26 05:10:00 신고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연극판에서 ‘연출가’ 이름이 관객의 입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무대와 배우 뒤에 숨는 것이 연출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선웅만큼은 예외다. 고전을 과감히 비틀어 웃음과 눈물을 뒤섞고, 관객의 감정을 흔드는 그의 무대는 그 자체로 ‘고선웅표 연출’이라는 브랜드가 된다.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10년간 사랑받아온 그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다. 2015년 초연 이후 평균 객석점유율 93%, 누적 관객 3만6000명을 기록했다. 매 시즌 매진 사례를 이어 왔고, 티켓 오픈 때마다 국립극단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팬덤을 형성했다. 일곱 번째 시즌을 맞아 처음으로 10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 선보이며, 오는 30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최근 서울 중구 경향아트힐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고선웅 연출은 “같은 역할을 10년간 연기해온 만큼 배우들의 호흡에도 세월이 자연스레 배어날 것”이라며 “원수의 밑에서 아이를 키우며 복수를 완성하는 서사의 힘이 지금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강하게 와닿는 것 같다”고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고선웅 연출가가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작품은 중국 4대 비극 중 하나로 불리는 원작 ‘조씨고아’(기군상)를 고 연출이 각색·연출했다. 부당한 권력, 복수와 용서라는 보편적 질문을 한국적 미학으로 풀어내며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등 주요 연극상을 수상했다. 야욕에 사로잡힌 도안고가 정치적 맞수인 조순의 구족을 몰살하자,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조씨고아’를 지켜내며 20년의 기다림 끝에 복수를 완성한다는 이야기다.

“저에겐 특별한 작품이에요. 2015년 이 작품에 출연했던 임홍식 선생께서 공연 직후 갑작스럽게 쓰러져 세상을 떠났죠.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피리 소리에 맞춰 놀다 보면 어느새 한바탕의 짧은 꿈’이라는 대사를 하셨었는데, 정말 그대로 삶을 살다 가신 것만 같았죠. 그때부터 어떻게든 이 공연을 이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푸르른 날에’ ‘퉁소소리’…작품마다 호평

고 연출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4년간 광고회사를 다녔고, 회사를 나온 뒤 본격적으로 극작에 몰두하게 됐다. 1999년 신춘문예에서 희곡 ‘우울한 풍경 속의 여자’로 당선된 그는 연극 ‘락희맨쇼’의 작가로 무대에 정식 입문했다. 이후 2002년 연극 ‘데미안’을 통해 연출로 이름을 올렸고, 2005년에는 극공작소 마방진을 창단하며 창작과 연출 활동의 폭을 넓혔다.

고 연출이 각색·연출한 작품은 매번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단숨에 ‘스타 연출가’로 자리잡았다. 2010년 셰익스피어 ‘맥베스’를 과감히 변주한 ‘칼로 막베스’로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고, 이듬해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푸르른 날에’까지 연이어 흥행시켰다.

그에게는 ‘옛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는 스토리텔러’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비롯해 ‘서편제’ ‘홍도’ ‘퉁소소리’ 등에서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고 연출은 “원래 지루한걸 못 견딘다”며 “우선 스토리가 재밌어야 하고 그 안에 인물이 살아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며칠이 지나도 생각이 나고 여운이 남는 작품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선웅 연출가가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이야기 중심 놓치지 말아야”

그는 관객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주인공의 욕망·갈등·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면서 맥락을 잡아주는 것이 연출의 역할이라는 생각에서다. 고 연출은 “가끔은 관객이 ‘무엇을 따라가야 하는지’ 조차 헷갈리는 작품도 있다”며 “그런 일이 없도록 배우들과 끊임없이 논의하며 연출의 방향을 잡아간다”고 강조했다.

고 연출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배우의 ‘선량함’이다. 연기를 뽐내거나 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연출은 무대에 선량한 집을 짓고, 관객은 그 안에서 마음껏 놀면 된다”며 “선량한 마음이 있어야 무대에서 좋은 일이 벌어진다”고 말하며 웃었다.

올해는 극공작소 마방진을 창단한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매번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수차례 실패와 빚, 연습실 퇴거 위기까지 겪으면서도 단원들은 그와 함께해왔다. 고 연출은 “20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며 “결국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서로를 아끼고 우애를 지켜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의 관심은 고전 작품으로 향할 예정이다. 고 연출은 “옛날 작품은 이미 검증이 됐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다”며 “재밌는 고전을 골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들려줄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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