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독립예술공간 사용자공유공간planC가 운영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실험적 기획전 ‘모두가 아는 도둑질: 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오는 12월 5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기획은 사용자공유공간planC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독립큐레이터그룹 Clab이 맡았다. 회화·설치·퍼포먼스부터 실험예술에 이르기까지 총 37팀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며, 미술 분야를 넘어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이 공간의 마지막 장면을 함께 채운다.
이번 전시는 ‘도둑질’이라는 파격적 형식을 골격으로 삼는다. 예술가가 완성된 작업을 공간으로 반입하는 기존 방식 대신 먼저 공간의 일부를 훔쳐간 뒤, 그 ‘훔친 공간’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다시 전시장에 설치하는 역방향 구성 방식을 제안한다.
참여 작가들은 창문·벽·문틀·조명·천장재·보관함·커튼 등 ‘planC의 일부’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삼아 단 한 번, 한 조각만 훔칠 수 있다. 이는 절도 행위가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잔여와 흔적-소리, 질감, 온도, 시간, 공기-까지 포함한 ‘공간의 본질’을 다시 보게 하는 창작적 요청이다.
도둑질은 철저한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 작가들은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 문자로 출입 비밀번호를 발급받아 공간에 입장한다. ‘훔치기 전·후’ 사진 및 영상 기록, 계약서와 증빙 서류 제출, SNS 업로드 등을 거친 뒤 작업을 마감하고, 지정된 설치 기간에 공간 곳곳에 선착순으로 작품을 배치한다.
‘두 번의 방문 금지’, ‘단 하나만 훔칠 수 있음’과 같은 최소한의 규칙은 작가가 공간과 직접적 관계를 맺도록 이끄는 장치다. 이는 ‘계획된 전시 구성’이 아닌 공간과 예술가의 즉흥적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마지막 실험으로 기능한다.
12월 3일 오후 4시에는 연계 포럼 ‘불완전한 이상이 실현될 때 어떤 공동체가 형성되는가?’가 열린다. 사용자공유공간planC의 시작자 이산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이승준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사장, 톨 연결기획자, 김신윤주 예술가·예술사회학 연구자가 참여, 공간의 이상과 한계, 공동체의 조건을 논의한다. 이어 김이중, 유승협 작가가 참여하는 퍼포먼스가 오후 6시에 진행되며 종료전의 정조를 더욱 확장한다.
사용자공유공간planC는 100년 된 일식가옥을 기반으로 ‘선언’과 기부를 토대로 운영된 독립예술공간이다. 최대 10일 이내의 사용 기간이라는 단 하나의 규칙 아래 약 9년 동안 163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지역 안팎 예술가들이 생태예술·사회적 예술을 넘나드는 실험을 펼쳐온 중요한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2025년 12월을 끝으로 운영 종료가 확정되면서 이번 전시는 그 ‘사라짐’을 단순한 결말이 아닌 회수·재조립·재등장의 과정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공간이 예술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무엇으로 구성되며, 어떤 감응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마지막 질문을 관람객에게 건넨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훔치고 싶은가?”라는 전시의 마지막 문장은 공간의 부재 이후에도 예술적 관계와 상상력이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의 ‘2025 우수기획전시 지원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로, 지역 민간 문화시설의 기획력을 강화하고 도민의 시각예술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로 지원된다. 또 지역 자원과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주제 중심 전시를 유도하며,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예술 생태계의 저변을 확장하고 있다.
기획단체인 독립큐레이터그룹 CLab은 이러한 실험적 방식의 공동 기획을 통해 전북 지역의 독립큐레이터 양성·리서치 체계 구축·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 확보 등을 목표로 활동 중이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