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입봉' 유감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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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입봉' 유감 外

연합뉴스 2025-11-25 13: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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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본인 제공]

◇ '입봉' 유감

이 말을 쓰는 방송국 인간들은 정말 맘에 안 든다. 영화판 분들도 이 말을 많이 쓴다. 역시 맘에 안 든다. '입봉'을 밥 먹듯 쓴다. 입봉은 '잇본 一本/いっぽん'에서 온 말이다.

견습과정을 거쳐 일정 수준에 달한 기생(妓生)에서 유래한다.

한 젊은 방송작가에게 이 말 쓰지 말라고 지적하면 이런다.

"에이! 그거 일본말인 것 알아요. 우리가 그거 모르겠어요. 그냥 재미로. 그리고 확 와 닿잖아요."

과거 KBS/MBC, 둘밖에 없을 때는 일본 방송 베끼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서 방송용어도 그대로 따라 했다. 그게 마치 이쪽 분야 경험과 전문성을 담보해 주는 듯한 알량한 우월 의식까지 탑재하고서 말이다.

이제 세월이 많이 지났다. 우리는 이제 일본과 거의 대등한 존재 아니던가.

이 젊은 작가가 소따옴표 친 '입봉'도 아닌 그저 입봉이라고 한 대담함을 보인다는 건 이게 일본말인지 아예 모른다는 방증이다.

"그럼 뭘로 바꿔 쓰나요? 적당한 게 없잖아요!"

기계적 대체어가 마땅한 게 없을 땐 맥락에 맞게 상황어를 써야 한다.

'데뷔'가 싫으면, '번듯한/어엿한 PD가 되었다. PD로서 인정받았다 할 만하다' 등으로 변화를 줘야 한다.

◇ 고려청자의 빌미

"충남 태안 마도 인근에서 어부가 건져 올린 청자 26점이 빌미가 되어 고려시대 곡물 운반선인 마도 1·2·3호선이 발굴됐다."

모 신문에 나온 내용이다. 여기서 대체 '빌미'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고려청자가 별것 아니든가, 아니면 그걸 발굴한 게 잘못한 일이든가 그래야 맞는 문장이다.

빌미는 탈이 나거나 나쁜 일이 생길 때 쓰는 말이다.

이럴 땐, '을(를) 계기로', '을(를) 필두로', '을(를) 시작으로' 등이 적절하다.

고유어를 꼭 고집한다면 '물꼬를 트다'가 걸맞을 듯하다.

◇ 하루빨리

'하루빨리'는 하루만 빨리(one day earlier)가 아니라 즉시, 가능한 빨리(immediately, as soon as possible)의 뜻이다. 하루속히/하루바삐와 같다. 뜻이 확장된 셈이다.

따라서 한 단어로 붙여쓴다.

'그중/그때/그전/큰일 나다/거듭나다/함께하다/밤하늘/첫인상/첫선/전날/쓸데없이/한아름/한마디/어느새/어느덧' 등의 예도 같은 원리다.

한 단어처럼 쓰이기에 띄어 쓰지 않는다.

◇ 민숭맨숭

'민숭맨숭, 맨숭민숭'을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어쩜 이렇게 절묘하게 틀릴 수 있을까.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민숭민숭, 맨숭맨숭, 맹숭맹숭, 맨송맨송'.

이 넷만 맞는다.

아니, 이렇게 네 개나 정답이다. '밍숭맹숭'은 표준어가 아니다.

'하는 일이나 태도가 겸연쩍고 싱거운 모양'의 뜻이다. 아마도 '싱숭생숭'이 있으니까 대충 '밍숭맹숭일거야', 이랬든 듯싶다.

◇ 아이로니하다?

외래어는 형태적으로 국어에 동화(同化)되는 특징이 있다. 외국어의 동사/형용사는 반드시 우리의 '-하다'라는 접사와 결합한다.

'-이다'가 아니다.

가령 영어 형용사 'smart'는 'be'와 결합하지만, 우리말로 와서는 '그는 스마트이다'가 어색하다.

'그는 스마트하다'라야 비로소 어울리는 식이다. 'wild', 'cute', 'tough'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영어의 명사(체언)에 '-하다'를 붙이면 문법적으로 오류다.

연장선상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게 '아이로니/아이러니하다'다. 'irony'는 명사이기에 '-하다'가 올 수 없다.

'아이로(러)니컬하다'라야 올곧다.

또 하나가 '디테일(detail)하다'인데 이건 더 문제다. '디테일이 있다/좋다/강하다' 등으로 해야 맞는다.

◇ 날씨 방송 유감

"내일 동쪽 지역은 건조함을 더하겠습니다".

한글로 된 문장이로되 한국어답지 않다. 십분 양보해도 방송언어가 아니다. 이상한 글말(문어체/영어식)이다.

'-함'은 글에나 어울린다. 방송에선 아니다.

동쪽도 문제 있다. 뭉뚱그릴 게 아니다. 영서와 영동은 날씨가 같지 않다. 언제나 구분해야 한다.

→"내일 강원도는 오늘보다 더 건조합니다. 영서가 영동보다 심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으)니'다. 이건 설명문에나 어울리는 일종의 문어체다.

"내일은 바람이 세찰 거셀 것으로 예상되니~~/화창할 것이라는 예보도 있으니~~"

대안은 종결어미로 빨리 매듭짓고(~됩니다/~있습니다), 바로 붙여 읽는 것이다. 활자의 공간과 읽기의 여백은 다른 것이다.

◇ 앵무새로 글쓰기

아나운서를 향한 멸칭은 '앵무새'다. 주어진 원고를 그대로 읽는다는 아우라를 두고 일부 몰지각한 PD나 기자들이 그리 불렀다. 그러나 텍스트를 그냥 전달하는 아나운서는 없다. 알맞은 속도, 정확한 크기, 정확한 발음을 탑재한다.

그래야 아름다운 읽기인 낭독이 된다.

그래도 소싯적에는 '앵무새'란 말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우리 말글에 대한 이론화에 무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보니 학생들의 숙원 사업은 글쓰기였다. 나부터 글을 잘 써야겠노라 다짐하고 적지 않은 세월을 관련 서적과 논문에 천착해왔다.

먼저 관찰력을 키워야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 먼저 강조하는 대목이다. 관찰(觀察)이란 한자에 글쓰기 비밀이 그대로 들어있다. 이 한자는 세 개의 한자로 구성돼 있다.

우선 왼편에 황새 '관'이 눈에 띈다. 그 밑에 뜻을 더하는 새 '추', 그리고 오른쪽은 볼 '견'으로 짜여 있다. 학이나 황새가 먹잇감을 노려보는 모습을 보았는가. 정지 동작처럼 먹이를 주의 깊게 노려보곤 순식간에 낚아챈다. 사물이나 현상을 세밀하게 분명히 보기에 다름 아니다.

'살피다'라는 의미의 '찰'은 집 '면'과 집 '우'에 제사 '제'자가 합쳐진 구성이다. 집이나 사당에서 '제'(祭)를 올릴 때는 분위기가 경건해야 함은 물론이다. 제사상 위에 있는 제물(祭物)의 위치가 바른지, 잡스러운 이물질이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게 '찰'(察)이다. 두루 넓게 보는 것이다.

요컨대 글을 잘 쓰려면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 자신과 인연을 맺게 되는 사람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넓고 깊게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게 관건이다. 이를 통해 요즘 회자하는 '인사이트'(insight)를 얻을 수 있을 터.

성찰(省察), 지혜(智慧), 교훈(敎訓)이 이와 맞닿아 있다.

다음은 감수성 키우기다. 감수성(感受性)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라는 다소 물리적 해석이 사전의 풀이다. 관찰력이 눈이라면 감수성은 마음이다. 자신의 오감을 세상을 향해 펼칠 일이다.

안으로는 '내밀한 정서 돋우기'라고 할 것이며 또한 사람을 향해서는 상대의 느낌을 우선시한다는 방향 설정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봐도 그렇다. 대상의 마음결이 나의 감정보다 윗길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자.

나의 '말글'을 수용자, 즉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우선에 두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메모다.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좋은 말, 멋진 글을 적어 놓는 습관은 언제나 힘이 세다. 기왕이면 디지털 저장보다 아날로그, 즉 펜으로 노트에 적어 놓을 일이다. 그래야 오래 남는다.

관찰력과 감수성을 키우면 자연스레 메모하게 된다. 메모하다 보면 관찰력, 감수성이 커진다.

글쓰기의 선순환이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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