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가 들고온게 산중희호도라는 그림인데
당시 조선에 호랑이가 있었던건 맞지만
이새끼들이 민가 내려오는건 땅덩어리 좁아서 계속 부닥쳤던거지
뭔 지리산 번식기를 그대로 그린 그림이다 이지랄 하면서 ㅋㅋㅋ
또 또 일제 해수구제 감사합니다 떡밥으로 몰고갈라 하는데요
당연 방구석 싱붕이 따위보단 전문적일 서울역사박물관의 해설을 보면
산중희호도는 유치봉(호 하산)의 작품으로 78마리의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과장되게 많은 수의 호랑이가 그려진 작품"으로, 호랑이는 민화, 풍속화 맥락에서 악귀를 쫒는 벽사의 상징적 의미를 맡고 있기에, 사실적 재현이 아닌 상징적 장면을 연출한 것이라고 함.
쟤 말대로 작가가 그대로 보고 옮긴거라면 표범은 왜있노? ㅋㅋㅋ
당시 사람들은 표범이 암컷 호랑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여기에 끼워넣은거임 그냥 ㅋㅋㅋㅋ
호랑이의 벽사 의미를 담아 그린 그림들은 이외에도 많음
이건 단순히 당시 산에 호랑이가 많았다는걸 나타내려고 한게 아니라 민속적 주술의 의미로
서양에서 대문짝에 사자 대가리 박아놓는거랑 비슷한 맥락임
당시 이렇게 특정한 의미를 상징하는 동물을 대량으로 그리는 풍습은 동양 전체에서 흔했음
위 그림은 중국 랑스이닝이 그린 백준도라는 그림인데
마찬가지로 당시 중국 들판에 하얀 야생마가 존나게 많았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그냥 상징성을 부여한거임
일본의 鳥獣戯画같은 에마키류도 다양한 동물들을 집단으로 묘사해 유희적 의미와 상징성을 드러냈음
저거 보고 당시 일본에는 개구리와 토끼가 존나 많았대
섹스도 했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거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중희호도만 가지고
당시 조선 산자락에 호랑이는 수백마리 무리지어 뭉쳐서 뒹굴거릴정도로 많았다라고 주장하는 어그로를 거름 없이 받아들이는 새끼들이 딱 여기에 있음
다음카페 누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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