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은, 염혜란, 송강호, 엄태구…. 미세한 주름마저 연기하는 듯한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연극 무대에서 출발했다는 것. 연극이 '문화예술의 산실'이라 불리는 이유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말합니다. "연극 하면 배고파진다"고요. 팝콘 먹으며 즐기는 영화, 설거지하며 틀어 두는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어쩐지 멀게 느껴집니다.
이 거리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쯤 연극을 일상처럼 만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에 답을 찾고자 장은수 연극평론가를 만났습니다. 한국외대 독일어과 명예교수이자, 오랫동안 한국 연극 현장 안팎을 지켜온 인문학자. 평론만 아니라, 고(故) 김민기 선생님의 '지하철 1호선' 행사 통역을 비롯해 연출과 배우 못지않게 무대를 사랑해왔습니다.
장은수 평론가는 말합니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 사회에서는, 예술가가 늘 배고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에는 인문학적 통찰과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연극을 이야기할 때 빛나는 ‘사랑에 빠진 눈빛’이었죠. '집'이 자산이 되는 시대에, '극장과의 거리'를 따져 집을 구했을 정도니까요.
긴 인터뷰를 마치고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결국 '사랑' 이야기구나! 때로, 사랑은 한 사람의 삶의 동선을 기꺼이 바꿔놓지요. 연말이 성큼 다가온 지금. 장 교수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 어느새 연극 표를 예매하게 되길 바라며 이 인터뷰를 올립니다.
Part1. 성악가를 꿈꾸던 학생, 빈 유학길에 빠진 '함정'은
장 교수는 왜 연극을 사랑하게 된 걸까요? 뷔히너, 브레히트, 괴테… 독일 대문호들의 희곡 때문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반전이 있었습니다. 본래 꿈은 ‘성악가’였대요. 부모님의 반대로 차선책이던 독문학과에 진학했다고.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독문과 학생이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간 까닭이죠. “음악의 본고장에 가면 부모님 몰래 성악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러나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빈에 가니 커다란 함정이 있더군요. 처음 독문과 수업을 듣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게다가…”
빈의 공기에 뒤섞인, 일상적인 공연예술 인프라가 장 교수의 삶을 바꿨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기숙사가 시청 바로 뒤에 있었어요. 시청 맞은편으로 길만 건너면 국립극장이 있던 거예요.”
그렇게 장 교수의 ‘낮강 밤공’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강의실과 기숙사, 극장까지. 모든 곳이 국립극장을 사이에 두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반경에 있었어요. 하루가 멀다고 극장에 다녔죠. 낮에는 학교 가서 강의 듣고 저녁에는 공연 보러 가는 게 일과였어요.” 학교의 독문과와 공연예술학이 “기관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건물은 붙어”있는 것도 영향을 줬대요. 문학과 공연, 사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니까요.
장 교수의 연극에 대한 ‘성실한 사랑’이 연마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낭독공연과 연극을 보러 가기 전, 항상 ‘대본’을 숙지했대요. 이는 후에 평론가가 된 뒤에도 이어진 습관이자, 관객에게도 추천하는 ‘관극 방법’.
“유학 시절, 언어가 잘 안되니 안 들리는 경우를 대비해 미리 대본을 읽고 갔죠. 유럽의 국립극장에서는 공연 전에 대본을 구하기 비교적 쉬웠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이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대형 뮤지컬은 대본을 구매할 수 있지만요. “한국 연극은 저작권 문제로 그런 점이 잘돼 있지 않아 아쉬워요. 작가에 대한 저작권 대우가 잘 되어 대본을 구하기 쉬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극을 더 깊이 있게 보게 하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스포일러 주의’ 문화를 넘어, 극에 대한 더 풍부한 이야기가 극장 밖을 채울지 몰라요.
Part2. 진짜 공연은 무대 밖에서 시작된다
…시민들에게 예술 향유의 권리를!
실제로 독일과 빈의 공연환경은 탄탄하기로 유명합니다. 독일은 ‘중앙극장’과 지역극장의 위계가 적고, 학생들을 향한 할인제도도 잘 돼 있습니다. 일상에서 공연문화예술을 누리기 비교적 쉽다고 할까요?
“연극과 무대 밖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장 교수는 말합니다. ‘관극’이란 극장 안에서만이 아닌, 밖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실제로 당시 빈은 연극인과 관객의 소통이 자연스러웠대요.
“유학 시절, 극장 근처 카페 란트만 앞에 가면 (연극인들이) 많이 앉아 있었어요. 연출도 헐렁한 작업복 차림으로 차를 마시고 있곤 했죠. 그럼 인사도 나누고, 질문도 할 수 있었어요. 그밖에도 공연 끝나고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대화 시간도 많았죠.”
하지만 어떤 내향인(?)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예술인에 대한 ‘투명한 벽’을 느낄 때는 많습니다. 하지만 ‘극장 밖에서’ 하는 또 다른 관극 준비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보세요. 시작 전까지 작품에 대해 대화하는 거죠. 팸플릿을 보고 미리 워밍업하는 것도 감상의 깊이를 다르게 하죠. 준비 없이 가서 공연을 볼 때랑은 공연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요. 가능하다면, 관객과의 대화도 신청해보고…"
장 교수는 덧붙여 말합니다. “‘시민에게 예술향유권을 달라!’라고 많이들 말하죠. 그런데 이 시스템을 갖추는 건 공적 기관의 일입니다.” 대본 감상을 비롯해 연극인과 소통 창구가 많아진다면 ‘향유’의 폭이 더 넓어지겠죠?
Part3. 국회의원도 배우를 할 수 있는 세상,
연극배우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세상은…
조심스럽게 가장 큰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연극인의 삶은 왜 어려운지. 그러면서도 ‘연극인의 삶이 궁핍하게만 재현’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냐는 질문이었죠.
과거, 한 연극배우는 ‘(이제는 성공한 배우가) TV에 나와 연극인의 삶을 어렵게만 묘사하면, 누가 배우를 존경하고, 누가 하고 싶겠냐’란 질문을 하기도 했죠. 장 교수는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시야가 트이는 대답을 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자 직종을 열망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권력과 돈이라고 봤어요. 돈이 있어야 존경받는다는 인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배고픈 예술가가 어떻게 존경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장 교수는 말합니다. 수백 년의 연극 역사를 지닌 유럽 배우들도 사는 건 어렵다고요. 기관 소속으로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면요. 캐스팅될 때까지 불안정 속에서 ‘기다려야’하니까요.
하지만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의 경우, 한국에 비해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와 ‘인문주의’ 풍토가 뿌리 깊은 게 차이라고요. 때문에 배우를 비롯한 문화예술인이 성장하고 존중받는 토양을 만든다는 거죠. 꼭 배우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철학과를 비롯한 ‘비 상업적인’ 인문학 분야의 기본도 튼튼한 편이라고요. 장 교수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줬습니다.
독일 도서관에 가면 ‘프리바트겔레어르터’(Privatgelehrter)로 불리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대요. 영어로 하면 ‘private scholar’, 한국어로는 재야 학자이자 독립 연구자 정도겠네요. “책에 빠져 도서관에 사는”,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상주’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때로는 ‘도서관의 괴짜’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 지적 수준이 어마어마하다고요. 실제로, 장 교수는 유학 시절 이 도서관의 학자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많은 성장을 했대요.
이런 사람들이 자생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기반은, “독일의 촘촘한” 사회 지원제도겠죠. 장 교수는 말합니다. “이런 분들이 있을 정도로 촘촘한 사회 법안이 만들어져 있다면, 예술가들도 안정되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죠. 물론 지원을 남용하는 이가 있다 해도, 후유증이 두려워 좋은 법안을 피할 필요가 있을까요?”
코로나19 시기 전부터 들려온 연극인의 생활고를 떠올린다면 절실한 법안입니다. 장 교수는 “예술인이 기초생활권에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평등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복지기관에 의지하는 걸 넘어 국회와 정부에서 기본적인 법체계를 바꿔야할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인이 예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요. 예술 관련 법이 조성될 때도 당사자가 “법과 친해져” 참여한다면, 더 적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거죠.
예술인이 정당하게 예술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겸업”도 유의미하게 본대요. 연극인이 아르바이트를 하든, 또 다른 일을 하든, 국회의원에 진출하든요. 예술과 삶, 사회는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학문이 도를 닦는 것처럼 여겨졌죠. 예술도 예술만 파야 된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요? 예술인이 정당하게 예술로 돈을 버는 환경이 구축되는 것과 동시에, 예술도 현실과 가까이 있을 때 정말 사회에 기여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Part4. ‘인문학 해도 연극계에서 일할 수 있나요’
…드라마투르기, 번역, 젠더 연구까지
장 교수와 대화하며 번번이 놀란 것은 이겁니다. 인문학적 사고로 연극계를 바라보면 (이성적으로는) 꽤 많은 것이 풀린다는 걸요. 또, 인문학자가 연극계에 기여할 일이 많다는 것도요. 비평과, 통역만이 아닙니다.
장 교수는 김민기 당시 학전 대표가 한국의 서민을 담아낸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관련 행사에서 통역과 사회를 맡기도 했습니다. 한국 작품이 유명해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원작은 독일 그립스(GRIPS) 극단의 것이었거든요.
연극계에 젠더 문제의식을 부여하는 실천도 치열하게 해왔죠. 장 교수는 2019년, 동료 학자들과 『연극과 젠더』 총서를 펴냈습니다. 2018년, 연극계 미투 문제를 토론하며 몰입한 결과였죠. 또 다른 실천도 있었습니다.
장은수 교수는 2015년, 뷔히너의 희곡 '보이첵'을 새롭게 해석한 연극에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습니다. 오세곤 감독과 함께 원작의 ‘마리’를 ‘악녀’가 아닌 ‘피해자’로 비춰냈죠. ‘최약자’로 얘기되는 가난한 남성도, 어떤 순간 여성에게 ‘가해자’라는 사실에 주목한 겁니다.
(*드라마투르기: 작가, 연출가, 배우와 긴밀히 대화하며 극의 해석과 방향을 빌드업하고 완성도를 더하는 역할)
흥미롭게도, 장 교수는 이처럼 젠더 문제에 관심 가진 계기가 “연극계”가 아닌, “독문학자들과의 교류”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무려 30년간, 각국의 독문학자들과 연결되며 ‘젠더와 문화’ 스터디를 해왔대요. 인문학자의 시선이 연극계로 이어진 것.
“전 예술계가 진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젠더 담론에서만큼은 인문학계보다 연극 현장이 앞서가지는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왔죠.” “물론 지금은 2~30대 여성 연출가가 많아졌지만, 우리 세대에는 가뭄에 콩 나듯 있었어요. 젠더 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불편한 상황들에 계속 부딪혀 왔고요.”
나아가 장 교수는 이제 연극과 젠더 문제를 “‘성비’ 문제를 넘어 작품 안팎의 가부장성, 위계질서와 폭력성에 대한 비판”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봅니다. ‘보이첵’을 새롭게 해석했듯이요.
“미투 이후 젠더 감수성에 대한 의식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연극계가 지닌 전근대적인 부분은 아직 있어요.” 인문학과 연극에 관심 있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많고도 많습니다.
Outro. 무대와 극장 밖을 잇는 사랑의 실천가
이처럼 수많은 일을 해온 장은수 교수는 말합니다.
“남은 생은 더 많은 연극을 보고, 연극계와 관객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싶다”고요.
실제로 연극을 사랑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들만이 아닙니다. “일간지에 영화 평은 있어도 연극 평은 보기 힘든” 현실 말입니다. 전문 연극 잡지도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죠.
장 교수는 말합니다. “학문에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이 있다면, 연극은 연기를 근간하는 매체들의 기초학문”이라고요. ‘K-컬처’가 부상하는데, 정작 그 기초인 “연극”의 장이 줄어드는 건 역설적입니다.
그럼에도 연극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연극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장 교수처럼 말이지요.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 늘 가던 곳이 아닌 가까운 연극로를 찾아가보면 어떨까요. 수많은 사랑이 모인 그곳에서, 당신 역시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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