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과 달라진 폭력, 몸캠 피싱, 지인 능욕
사랑의 풍경이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랑을 가장한 폭력의 풍경이 진화했다. 과거의 폭력이 주먹이나 고성, 깨진 접시 파편처럼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형태였다면, 지금의 폭력은 소리 없이, 만질 수 없이, 그러나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당신의 삶을 관통한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편리한 도구인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도구가 연인이라는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 흉기로 돌변하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당신이 그를 믿고 허락했던 단 한 번의 영상 통화, 혹은 그저 당신의 일상적인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어느 날 당신의 영혼을 난도질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
최근 뉴스 지면을 뜨겁게 달구는 ‘몸캠 피싱’이나 ‘딥페이크 성착취물(지인 능욕)’과 같은 단어들을 보며, 당신은 그것이 모르는 범죄자들에게나 당하는 불운한 사고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통계는 잔인한 진실을 말해준다.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는, 놀랍게도 당신의 옆에서 밥을 먹고, 사랑을 속삭였던 전 연인, 혹은 현 연인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왜 당신의 몸을, 당신의 얼굴을 디지털 데이터로 박제하여 유린하는가? 이것은 단순한 성적 일탈이 아니다. 이것은 기술의 가면을 쓴, 가장 비열하고도 치명적인 인격 살인이다. 오늘 우리는 이 신종 디지털 교제 폭력이 어떻게 당신의 존엄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가해자들은 도대체 어떤 심리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지 그 어두운 내면을 파헤쳐보려 한다.
신뢰의 배신과 기술의 악용, 두 가지 유형의 디지털 덫
이 폭력이 끔찍한 이유는 ‘기술’이 발전해서가 아니라, 그 기술이 가장 내밀한 ‘신뢰’를 역이용하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당신을 디지털 감옥에 가둔다.
1. 사랑을 미끼로 한 덫: 연인 간 ‘몸캠 피싱’과 유포 협박
일반적으로 ‘몸캠 피싱’이라 하면, 낯선 사람이 영상 통화를 유도해 녹화한 뒤 협박하는 범죄를 떠올린다. 하지만 교제 폭력의 맥락에서는 그 양상이 훨씬 교묘하고 악랄하다.
시작은 언제나 ‘사랑’과 ‘친밀감’이다. 장거리를 연애 중이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나지 못할 때, 그는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한다. “얼굴 보고 싶어.”, “우리끼린데 어때?”, “이것도 사랑의 표현이잖아.” 당신은 망설이지만, 그를 믿기에, 혹은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에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는다. 그 순간, 당신의 사랑은 그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약점’으로 변질된다.
이 데이터는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 즉시 무기가 된다.
- - 통제의 수단: “헤어지자고? 그럼 이 영상, 네 친구들한테 보내도 될까?” 그는 이별을 막기 위해, 혹은 당신을 노예처럼 부리기 위해 영상을 볼모로 잡는다.
- - 보복의 도구: 이별 후, 그는 당신의 사회적 삶을 파괴하기 위해 영상을 유포한다. 이것은 ‘리벤지(복수)’가 아니다. 당신이 그에게 잘못한 것이 없기에 복수라는 단어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당신을 파괴하려는 디지털 테러일 뿐이다.
피해자는 자신이 ‘동의’해서 찍었다는 사실 때문에 극심한 자책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사랑을 나누는 것에 동의했을 뿐, 그것이 범죄의 도구로 쓰이는 것에 동의한 적은 없다. 신뢰를 배신하고 녹화 버튼을 누른 그 순간부터, 그는 연인이 아니라 범죄자였다.
2. 얼굴을 훔친 도둑들: 딥페이크와 ‘지인 능욕’
최근 급증하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은, 피해자가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아니 촬영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발생하는 성범죄다. 바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한 딥페이크 성착취물, 소위 ‘지인 능욕’이다.
가해자는 당신의 SNS 프로필 사진, 혹은 연애 시절 찍어둔 당신의 평범한 일상 사진을 이용한다. 그리고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당신의 얼굴을 포르노 영상에 합성한다. 기술은 정교해서, 얼핏 보면 진짜 당신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 조작된 영상을 텔레그램 등의 익명 채팅방에 유포하거나, 지인들과 공유하며 낄낄거린다. 피해자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행위로 인해 성적 수치심을 느껴야 하고, 알 수 없는 타인들에게 성적 대상화가 되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이것은 명백한 ‘신원 도용’이자 ‘인격 모독’이다. 가해자는 당신의 얼굴, 즉 당신의 정체성을 훔쳐다가 자신의 비뚤어진 성적 판타지와 과시욕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시킨다. 여기서 피해자는 철저히 ‘사물’ 취급을 당한다. 그에게 당신은 존중해야 할 인격체가 아니라, 클릭 몇 번으로 조작하고 유린할 수 있는 ‘이미지 파일’에 불과하다.
그들은 왜 ‘디지털 살인’을 선택하는가
도대체 어떤 심리를 가졌기에 한때 사랑했다던 사람에게, 혹은 친구였던 사람에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단순히 ‘성욕’이나 ‘호기심’이라는 단어로 퉁쳐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 행위의 밑바닥에는 훨씬 더 어둡고 찌질한 권력욕과 열등감, 그리고 왜곡된 남성성 과시 문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1. 파괴를 통한 통제력의 확인: “내가 너를 끝장낼 수 있다”
이별이나 갈등 상황에서, 가해자는 무력감을 느낀다. 당신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 한다. 현실에서 그는 당신을 붙잡을 힘도, 매력도, 능력도 없다. 그는 철저히 패배했다.
이때 디지털 성범죄는 그에게 ‘신(God)과 같은 권능’을 부여하는 착각을 심어준다. 엔터 키 하나만 누르면, 당신의 인생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다는 그 파괴적인 힘. 그는 당신을 파멸시킴으로써, 자신이 당신의 생살여탈권을 쥔 지배자라는 비틀린 쾌감을 느낀다.
이것은 전형적인 패자의 몽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는 유아적인 발상은, 디지털 기술을 만나 치명적인 흉기가 된다. 그는 당신의 몸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신이 공포에 떨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바닥난 자존감을 채우고 싶은 것이다.
2. 비뚤어진 인정 욕구와 ‘강간 문화’의 유대
특히 ‘지인 능욕’이나 불법 촬영물 공유의 경우, 이것은 단독 범행이라기보다 집단적인 성격을 띤다. 가해자는 조작하거나 훔친 당신의 영상을 남자들만의 단체 채팅방, 혹은 음지 사이트에 올린다. 왜일까?
그는 그것을 일종의 전리품(Trophy)으로 전시한다. “나 내 여자친구랑 이런 것도 찍었다”, “나 아는 여자애인데 몸매 봐라”.
그는 다른 남성들에게서 “오, 대단한데?”, “부럽다” 같은 저열한 찬사를 받음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받으려 한다. 피해자는 그들 사이의 유대를 다지기 위한 제물로 바쳐진다.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정복하고 전시하여 자신의 서열을 높이는 도구로 보는 시각.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힌 강간 문화(Rape Culture)의 단면이다.
그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기에, 집단 속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착취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려 든다. 이는 그가 얼마나 독자적인 자아를 갖추지 못한,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의존적인 인간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3. 죄책감의 마비: “이건 진짜가 아니잖아”
디지털 범죄의 가장 무서운 점은, 가해자가 죄책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특성이다.
그는 당신을 직접 때리지 않았다. 피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마우스를 클릭하고, 화면 속의 픽셀을 조작했을 뿐이다. 이 물리적 거리감은 가해자의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킨다. 특히 딥페이크의 경우, “어차피 가짜인데 어때?”, “실제로 한 것도 아니잖아”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가짜가 아니다. 사회적 평판의 붕괴, 대인기피, 자살 충동은 뼈가 부러지는 것보다 더 실재적인 고통이다. 가해자는 모니터 뒤에 숨어, 자신이 누른 버튼이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러한 도덕적 해리(Moral Disassociation)야말로, 그들이 별다른 죄의식 없이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심리적 엔진이다.
디지털 교제 폭력은 피해자의 몸에 멍 자국 하나 남기지 않지만, 그 사람의 사회적 존재 자체를 말살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잔인한 살인 미수다. 한 번 유포된 데이터는 영원히 삭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디지털 영속성)는, 피해자에게 ‘끝이 없는 형벌’을 선고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이런 피해를 입었거나 협박당하고 있다면, 나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하고 싶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다.
사랑했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던 당신의 마음은 죄가 아니다. 당신의 평범한 일상 사진을 올린 것도 죄가 아니다. 죄는 오직, 그 신뢰와 일상을 훔쳐 흉기로 가공한 그 사람에게 있다.
당신의 영상이, 혹은 당신의 얼굴이 합성된 사진이 인터넷 어딘가를 떠돈다 해도, 그것은 당신의 수치스러운 낙인이 아니다. 그것은 가해자가 얼마나 비열하고 저열한 범죄자인지를 증명하는 디지털 지문이자 범죄 기록 일 뿐이다.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숨지 마라. 당신은 범죄의 증거가 아니라, 그 범죄에서 살아남은 존엄한 생존자다. 디지털 감옥의 문을 부수는 힘은,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당신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 목소리에 응답하여 가해자를 낱낱이 찾아내고 단죄할 의무가 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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