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에 이슬람 문화를 전면적으로 소개하는 첫 공간 ‘이슬람실’을 22일 개관한다. 약 11개월간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카타르 도하 이슬람예술박물관과의 협업으로 성사됐으며, 초기 쿠란 필사본을 포함한 유물 83건이 한국 관람객에게 처음 공개된다.
전시 제목은 ‘이슬람 미술, 찬란한 빛의 여정’. 이번 개관은 단순히 하나의 전시실이 새로 생겼다는 의미를 넘어 한국의 박물관 지형 위에 또 하나의 문화적 지평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의 다섯 번째 확장
세계문화관이 다양한 문명과 예술을 다뤄온 가운데 이번 개관은 상설전시관 최초의 이슬람 주제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슬람 문화는 대체로 ‘먼 곳의 이야기’처럼 소개되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계 57개국을 아우르는 광대한 문화권이며, 우리 사회에도 이미 일정한 깊이로 스며들어 있다. 이번 이슬람실은 이러한 거리감을 가만히 좁히는 역할을 한다.
전시가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문자와 신앙이 예술로 승화된 장면들이다. 양피지 위에 흐르듯 적힌 쿠란의 글자들은 시간의 두께를 품은 채, 한 문명이 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시각화했는지 보여준다. 미흐랍이나 모스크 램프, 기도용 카펫 같은 종교 공간의 물건들은 아라베스크와 기하학이 만나는 그 고유한 미감을 고스란히 남기며, 관람객을 천천히 이슬람의 중심부로 이끈다.
◇ 3개의 장면으로 읽는 이슬람 미술의 구조
1부 ‘이슬람 세계의 종교미술’은 신앙과 예술이 하나였던 세계를 담는다. 양피지에 적힌 초기 쿠란 필사본부터 티무르 왕조의 장대한 필사본까지 문자예술의 정수가 집약됐다.
돔 지붕, 팔각형 구조로 꾸민 전시장은 실제 모스크에 들어온 듯한 음향·공간감을 재현한다.
2부 ‘이슬람 문화의 포용과 확장’은 이슬람이 바다와 육지를 통해 다른 문명권과 접촉하며 어떻게 통합적 미술을 만들어 냈는지를 보여준다.
이슬람 문화는 본래 경계를 향해 나아가는 성질을 지녔다. 2부에서 만나는 천구의나 아스트롤라베는 그 정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도구였던 이 기계적 구조물들이 사실은 이슬람 세계가 지식과 탐구를 얼마나 삶의 중심에 두었는지를 말해준다.
3부는 오스만·사파비·무굴 제국의 궁정 예술이 주도한 화려한 표현의 정점을 다룬다. 정교한 카펫과 직물, 장신구, 그리고 왕실 후원 아래 제작된 필사본은 이슬람 미술의 ‘종합예술’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 미디어룸, 어린이 체험, 기하학 패턴 실험까지
도하 이슬람예술박물관의 대표적 전시 공간인 ‘다마스쿠스 응접실’을 미디어로 재구성한 공간은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르는 장소이자, 이슬람 문화의 공간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장치가 된다. 이어지는 동선은 중앙아시아와 인도·동남아시아 문명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 이슬람이 다양한 문화와 닿고 섞이며 남긴 흔적들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만든다.
개막 전날인 21일 오후 8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유튜브에서 전시 해설 라이브가 열리고, 전시 당일에는 도하 이슬람예술박물관의 무니아 셰크합 아부다야 박사가 현장 강연을 진행한다.
◇ “예술은 국경을 넘는다” 서울과 도하를 잇는 협력의 성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유홍준 관장은 이번 전시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찬란하게 꽃핀 이슬람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고, 이슬람예술박물관의 샤이카 나세르 알-나스르 관장은 예술이 국경을 넘어 사람을 잇는 ‘보편적 언어’임을 강조했다.
낯선 문화에 다가가는 일은 어쩌면 언제나 느린 속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번 이슬람실은 그 느림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관람객이 천천히 시선을 넓혀갈 수 있는 하나의 조용한 문을 열어놓았다.
뉴스컬처 최진승 newsculture@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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