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오랫동안 종교적 신념처럼 작동해왔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 “좋은 대학이 인생을 바꾼다”는 문장은 수십 년 동안 가족을 움직였고 사회를 움직였으며 국가 정책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 오래된 신념은 지금 또 다른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이미 정상 범주를 벗어났고, 청소년들은 버티기 힘든 압력과 실패의 공포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 이미지(픽사베이 제공)
문제는 이 비극이 반복되어도,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렸다는 데 있다. 경쟁이 지나쳐도, 아이들이 고통을 호소해도, 정신건강이 무너져도 “한국은 원래 이런 나라”라는 체념이 모든 문제를 흐릿하게 만든다.
교육이 더 이상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지우고 가능성을 막아서는 구조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유지되는 일종의 관성이다. 이 구조를 지속시키는 데는 사회 전체의 책임이 있다.
정책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정치와 행정, 성적을 중심에 둔 학교와 교육기관, 성취만 요구해온 부모, 그리고 불합리한 현실을 ‘부득이한 것’으로 치부하며 방관해 온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 한국 아이들 자살율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아이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보이지 않는 절벽 끝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교육의 본래 목적은 경쟁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며, 성적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찾게 하는 일이며, 순위를 매기기보다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연이어 발생하는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이 사회적 재난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국가와 사회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거나 통계 속 사건으로만 소비한다. 아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세계를 바꿔야 한다는 질문이 이제야 비로소 제기되고 있다.
교육을 둘러싼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아이를 잃을 것이고, 그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아이들의 죽음을 ‘사회가 감당해야 할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국가라면 미래를 가질 자격이 없다.
우리의 침묵은 또 다른 생명을 앗아간다. 우리가 바꿔야 아이들이 산다. 그리고 이 구조적 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우리를 방관자가 아니라 공범으로 기록할 것이다.
Copyright ⓒ 월간기후변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