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은 이미 하늘 위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드론은 여전히 서류 위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정책 의지의 부재다. 기술이 아니라 의지가 날아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드론업계 관계자의 날선 지적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무관심한 정부 당국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드론은 재난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고, 전쟁터에서 판세를 바꾸며, 산업 현장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하늘의 혁신'을 펼쳐내고 있다.
드론은 이제 단순한 촬영기기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재난 대응, 산업 경쟁력의 축이자 데이터 주권을 좌우하는 전략산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의 드론산업은 여전히 규제와 제도, 예산의 벽에 막혀 '하늘을 날지 못하는 기술'수준에 머물러 있다.
< 폴리뉴스 >는 이번 [드론특집] 시리즈를 통해, '영흥만 해경 순직사건'에서 드러난 구조용 드론 도입 지연부터, 산불 진화·국방·산업용 드론의 부재까지, 하늘을 통한 생명과 안전의 혁신이 왜 멈춰 있는지를 짚고자 한다. [편집자 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에 보여준 교훈은 명확하다. 드론(무인항공기)이 향후 미래 전장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란 평가다. 드론은 수백억~수천억원에 이르는 고가의 전투기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면서, 전투방식은 물론 전쟁의 판도 마저 바꾸고 있다.
한국은 드론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드론기술 강국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한국의 국방용 드론산업은 여전히 '감시용 수준'의 드론제작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래 전장의 눈과 손이 된 드론산업에서 한국이 왜 이리 뒤처지고 있을까. 관급조달 및 예산구조의 경직성, 상업용 기술의 군사용 이전 지연, 전투 운용체계로의 전환 부족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재밍장비·안티드론 도입해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드론이 정찰·공격·전자전 기능을 통합하며 본격적으로 작전 무대에 등장했다. 전쟁 전문가들은 "오늘날 양측 전투손실의 최대 75%가 드론 관련 작전에서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군은 정찰드론을 앞세워 러시아군 진격로를 파악하고 드론 공격부대를 연계해 지상 병력과 장비를 타격했다.
한편 러시아는 일련의 공격드론(카미카제·연속발사 시스템)을 도입해 서방방위망을 교란하며 "소량 정밀"이 아닌 "다량 소모" 전략으로 전환했다.
이처럼 드론은 단순히 '관측기기'가 아니라, 명확히 전투 무기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전투기나 포병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손실 없이 목표를 탐색하고 때려맞추는 시대가 됐다.
바야흐로 전쟁의 판도나 양상이 드론의 등장으로 모두 바뀌었고, 전술마저 바꿔야 하는 국면이 된 것이다.
미국, 드론 100만대 구매 선언...드론을 전술자산으로 전환
미국 육군장관 대니얼 드리스컬은 최근 인터뷰에서 향후 2~3년간 최소 100만 대의 드론을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드론을 정교한 장비가 아니라 소모용 탄약처럼 봐야 한다. 언제든 필요한 만큼 찍어낼 수 있는 공급망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전투기-헬기 중심의 전력을 탈피해, 무인·자율 드론을 전술 자산으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값비싼 전투기 대신 비용 1/100에 불과...비용싸고 인력소모 없어
전투기는 조종사·정비인력·고가 장비·유지비용이 수반된다. 반면 드론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조종사나 정비인력 소모없이 빠르게 배치할 수 있다. 방위산업체의 한 관계자는 "전투용 드론 한 대 값은 전투기 비용에 비하면 수백분의 1에 불과해 비용면에서 훨씬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이제 우리 군도 감시용 정찰 드론을 도입하는 수준에서 전쟁방식을 바꾸는 전투드론 도입을 검토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대한민국 국방부가 지난 2024년 "드론 전력 2026년까지 두 배 확대"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아직도 드론을 주력 무기로 승격시키기보다는 보조수단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구체적인 드론구매 계획조차 나와있지 않다.
특히 국내 드론제작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드론부품 공급망은 열악하다. 중국산 드론 부품이 판을 치고있는 데, 서방세계의 군부대에 납품되는 드론에는 중국부품 사용금지다.
국내 드론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1백만대의 드론을 구매한다는 데, 우리 군에서도 1만대라도 드론을 구매해주면 좋겠다"면서 "드론용 모터나 밧데리 등 드론부품 공급망을 국산화하려면 마중물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내방산업계, 불법드론 막는 재밍장비와 안티드론 기술 개발 활발해
국내에서는 전투용 자폭 드론을 막기위한 재밍장비와 드론을 잡는 드론, 즉 '안티드론' 기술개발이 활발하다.
우선 공중으로 날아드는 드론을 막기 위한 재밍기술의 발전이 눈부시다. 한화시스템은 광섬유로부터 생성된 광원 레이저를 표적에 직접 조사해 소형무인기와 멀티콥터 등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레이저대공무기(블록-I) '천광(天光)'을 개발해 지난해 말 우리 군에 인도했다. 이와 함께 다기능 레이더와 세계 최고 안티드론 기술을 결합해 공격형 드론을 미리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안티드론 시스템도 개발해 해외 시장 진출을 겨냥하고 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안티드론 기술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투입돼 실제 현장 경호에서 활용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불법 드론 지능형 대응 기술개발 사업'을 통해 개발한 드론 탐지와 무력화 장비가 실전 배치돼 임무를 수행했다. 원자력연구원과 통신·보안기업인 바른기술이 공동으로 개발한 '지능형 무력화' 장비는 드론 탐지와 식별, 무력화의 전 과정을 단일 장비에 구현한 기술로, 드론을 실시간 해킹하는 라이브 포렌식 기술로 불법 드론의 제어권을 탈취해 적을 무력화할 수 있는 장비다.
또 세계최초로 드론에 재밍장비를 탑재해 불법드론을 탐지, 무력화시킨 뒤 그물포를 쏴서 포획하는 안티드론도 국내업체에 의해 개발돼 내년 초 부산과 울산신항에 실전배치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드론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샤하드 기지를 공격하는 자폭드론은 대공미사일로 막는다지만 분대나 소대 규모에 대한 공격을 막을 안티드론 솔루션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군에서도 소형 휴대용 재머장비나 분대 무기급 샷건 계열의 방어시스템, 그리고 드론을 잡는 안티드론 장비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시용' 수준 드론...관급 조달과 예산· 군사용 이전· 운용체계 전환 미흡
이처럼 국내 드론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나 한국군의 드론 도입 움직임은 아직 미미하다. 실제 작전무기로서의 활용 역시 제한적이다.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는 "국산 드론은 조달체계가 아직 투명하지 않고, 상업용 드론기술이 빠르게 발전해왔음에도 군사용 드론으로 기술 이전과 적응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단순 감시·정찰용 드론은 배치돼 왔으나, 공격·전자전·자율화 기능을 갖춘 무인기 운용체계는 아직 초기 단계인 것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
"한국의 드론은 군사용이 아닌, 민간 감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군사전문가의 지적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드론은 무기 아닌 생존전략...실전배치 늦으면 진다"
방위산업 전문가들은 "드론은 무기가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드론의 실전 배치가 늦으면, 전쟁에서 진다"면서 "한국은 민간기술을 군사무기 체계로 전환하는 데서 세계 흐름에 뒤처지고 있다. 감시용에서 전투형 무인기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드론은 이제 전장의 '눈과 손'이 됐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드론 기술이 이미 증명됐고, 이에 따라 전투 방식마저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 변화를 입체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국방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드론을 "감시용 수준"에서 벗어나 "무기 차원"으로 탈바꿈시키려면 드론산업을 지원할 조직·예산·기술을 한꺼번에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이 드론 100만 대 시대를 열고, 러·우 전쟁이 드론의 힘을 증명한 지금, 한국은 드론 제작기술이 아니라 드론 도입체계와 의지를 진지하게 점검해야 할 때다.
[폴리뉴스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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