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2023년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을 동시에 사로잡았던 '아Q정전'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구성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즌은 배우와 하이브리드 인형이 결합한 실험적 무대를 통해 아큐를 희극적 패배자가 아닌, 시대 속에서 표류하는 현대인의 얼굴로 되살린다.
루쉰(본명 주수인, 1881~1936)의 원작 '아Q정전'은 신해혁명 전후 농촌을 배경으로, 하층민 날품팔이 아큐의 비극적 삶을 그린다. 아큐는 끊임없는 조롱과 폭력 속에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정신 승리법'을 발휘하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사회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큐의 존재는 이름과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아(阿)'와 'Q'는 친근함과 알 수 없음, 변발과 시대적 상징을 동시에 담아내며, 그의 삶을 통해 오늘날 권력과 억압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을 발견하게 한다.
공연의 핵심적 장치는 배우와 결합된 하이브리드 인형이다. 인형은 인간과 도구,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큐의 내면과 외부 현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관객은 이를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구조를 돌아보게 된다.
아큐의 삶은 끊임없는 업신여김과 조롱으로 점철된다. 아큐는 마을 지주댁 하녀에게 접근하며 허세를 부리고, 혁명당의 물결 속에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혁명당원을 자처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모욕과 비극으로 이어진다.
관객은 아큐의 허세와 비루함에서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그의 비극에서 묘한 공감을 느낀다. 하이브리드 인형은 인간의 나약함과 사회 구조의 냉혹함 사이 긴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아큐의 내면과 외부 현실을 동시에 드러낸다.
배우 민일홍은 아큐의 복합적 성격을 섬세하게 구현한다. 인형 제작과 움직임을 담당한 기태인, 김경란은 아큐를 생동감 넘치는 존재로 만든다. 무대 위 긴장감은 배우와 인형, 관객 사이에서 끊임없이 증폭된다. 연출 정욱현과 각색 이주영은 원작의 메시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무대, 조명, 음향, 의상팀의 섬세한 협업은 결속과 해체 사이를 오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하며, 관객에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을 전달한다.
아큐의 삶과 행동은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를 드러낸다. 아큐는 피해자가 아니라, 시대적 혼란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인간이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개인과 사회 사이의 관계, 자유와 통제의 문제를 성찰하게 된다.
하이브리드 인형은 아큐의 인간성과 사회 구조 사이 긴장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은 현실의 아이러니와 인간의 나약함을 동시에 경험한다. 인형과 배우가 만드는 무대는 관객에게 몰입과 사유를 요구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큐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견디는가. 아큐의 비극은 관객 각자가 사회 속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돌아보게 만든다.
루쉰의 원작이 보여준 민중의 무지와 권력의 허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인의 삶 속 아큐를 발견하며, 관객은 사회 구조의 냉혹함과 자신이 선택한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된다. 하이브리드 인형과 배우가 만들어낸 '아Q정전'은, 인간의 나약함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극대화한 무대 실험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 공연은 관객에게 웃음과 공감, 성찰을 동시에 제공하며, 문화적 경험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
아큐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동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우리는 무대 위 아큐를 통해 현실 속 나약함, 권력에 대한 굴복, 그리고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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