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중국 산둥원양해운그룹과 체결한 제주~칭다오 컨테이너 정기항로 계약이 심각한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 10월 취항한 ‘SMC 르자오호’는 712TEU 규모의 컨테이너선이지만 첫 항차에 38TEU, 이후 2항차 12TEU, 3항차 1TEU에 불과한 실적을 기록하며 기대와 달리 극심한 물동량 부족을 드러냈다. 제주도는 직항로 개설로 물류비 62% 절감, 수출경쟁력 제고 등을 앞세웠지만 현실은 손익분기점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요로 인해 장기간 적자 운항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문제의 핵심은 ‘물동량 부족 시 운항손실 전액을 제주도가 보전한다’는 비상식적 계약 구조다. 제주도의회에 따르면 연간 52항차 기준 손익분기점은 최소 200TEU, 연 1만1천500TEU 수준이다. 그러나 향후 2년 내 확보 가능한 물량은 애초 계획의 약 30%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결국 3년 계약 기간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것이 명약관화함에도 제주도는 중국 선사 측의 철수에도 계약 해지권을 갖지 못하는 불리한 조건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제주도가 부담해야 할 보전액도 만만치 않다. 선박 운영비는 연간 약 76억원, 3년간 228억원에 이르며 제주도는 용선료와 손실보전금으로 연간 최대 72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미 3개월 치 용선료 약 10억원이 지급된 가운데 앞으로 청구될 손실보전비까지 고려하면 실제 부담액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출물량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운항적자까지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구조는 도민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계약서에는 국제계약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전쟁, 테러, 국경 통제 등 불가항력 면책 조항이 빠져 있으며 물동량 확보에 대한 현실적 검토도 부실했다. 이번 사안은 과거 최소수익보장(MRG)제도 악용으로 논란을 빚었던 인천공항고속도로, 경춘고속도로, 지하철 9호선 등 호주 매쿼리 자본의 좋지 않은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민간사업자에게 과도한 수익을 보전해주며 정부와 지자체가 막대한 재정 부담을 떠안았던 전례와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공기관이 전문성 부족으로 불평등 계약을 체결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제주~칭다오 항로 개설 자체는 지역 물류 여건 개선이라는 중장기적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 도민의 혈세를 담보로 외국 선사의 손실까지 보전해주는 방식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공무원은 국제계약을 체결할 때 무엇보다 국익과 지방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벤트성 성과에 급급해 검증 없이 사업을 추진한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 태만이며 도민에 대한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제주도는 조속히 협약의 문제점을 재검토하고 불공정 조항의 수정과 물동량 확보를 위한 현실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물류기업, 선사, 화주와의 실질적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단계적 목표치를 기반으로 한 운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공공의 이익보다 앞선 행정 편의주의와 전문성 결여는 결국 지역경제 전체에 부담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주가 진정한 국제물류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니라 치밀한 분석과 공정한 계약, 그리고 지속가능한 운영체계가 뒤따라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이나 책임 회피가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투명한 설명과 적극적 조치다. 제주도는 이번 사안을 반면교사 삼아 행정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도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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