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조조] 소설 연재 안내
본 소설은 현 정세의 사건들을 조조, 손권 등의 인물과 탁류파, 청류파 등의 가상 정치 세력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팩션(Faction)물입니다.
서라, 짐짓 '대의를 앞세우나' 실은 사사로운 이익과 권력을 좇는 자들을 탁류파(濁流派)라 칭하고, 그 반대편에서 '청명한 정치를 부르짖으나' 실은 권문세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을 청류파(淸流派)라 부르노라. 현재 탁류파는 여당인 민주당, 청류파는 야당인 국민의힘이니라. 조조(曹操)는 탁류파의 우두머리이자 대선을 통하여 대권을 잡은 당대 제일의 웅걸이었다. 조조의 대적이자 청류파가 밀던 인물은 곧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권(孫權, 윤석열 전 대통령)이었다.
천하의 기운, 탁류에 휩쓸리다
후한 말, 천하가 어지러울 적에 조조는 서원(西原, 성남) 땅을 근거지로 삼아 백성을 구제한다는 명분 아래 급속히 세력을 불렸다. 허나 그가 관직에 오르면서 일으킨 일련의 논란은 조정의 근간인 법치(法治)마저 뒤흔들 지경이었다. 탁류파(濁流派, 여당)는 조조의 세를 등에 업고 관료 사회를 장악하였고, 이에 맞서는 청류파(淸流派, 야당)는 선왕(先王)의 법도와 인의를 외치며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올렸다.
이 무렵, 천하의 사법(司琺)을 지켜온 명문가의 후예, 손권(孫權,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록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으나, 청류파의 정신적 지주로서 조조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면소의 조령(詔令)과 위임죄의 폐지
조조의 조정은 어느 날, '경제 활성화'와 '경영인의 부담 경감'이라는 미명 하에 헌법 아래 세워진 형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조령을 준비하였다. 바로 위임죄(委任罪, 배임죄)를 형률에서 완전히 삭제하겠다는 것이었다.
탁류파의 수장 김 원내대장은 국회에서 대언하였다.
"위임죄는 그 경계가 모호하여 일선 경영인들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되어왔소! 이를 폐지하여 백성들의 재산을 불릴 기회를 주어야 하오!"
허나 청류파의 김 최고위원은 이를 두고 일갈하였다.
"이것은 기껏해야 사재(私財)를 탐한 소인배들을 위한 조령일 뿐이다! 위임죄가 사라진다면, 회사의 자금을 횡령하고 탈세하는 재벌 총수 일가를 무엇으로 묶어둘 것인가?" 이어, 그는 "이 조령은 조조 단 한 명을 위한 면소(免訴)의 계책이다. 그가 서원 땅에서 저지른 황룡강(黃龍江, 대장동)과 백현(栢峴)의 비리를 이 법 하나로 덮으려 함이니, 이것이 어찌 법치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실로, 조조가 다스리던 서원 땅의 거대한 개발 이권인 '황룡강 개발 비리'의 핵심 혐의가 바로 이 위임죄였던 터. 만약 이 법이 폐지된다면 조조는 유무죄를 가릴 필요 없이 해당 혐의에서 면소 처분을 받게 되어, 그의 발목을 잡던 사법 리스크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었다. 청류파는 이를 '1인 면죄부 입법'이라 규탄하며 사법 쿠데타의 서막이라 소리쳤다.
노 장군의 탄식, 황룡강의 이권을 놓치다
위임죄 폐지 논쟁이 한창이던 중, 조정의 사법(司琺)을 총괄하는 검찰총장 직무대행 노 장군(노만석)에게는 더욱 뼈아픈 시련이 닥쳤다. 바로 황룡강 개발 비리 사건에서 1심 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하여 항소(抗訴, 상소)를 포기하는 결정이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민간업자들이 취한 부당 이득 칠천팔백억(7,800억) 금(金)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 1심 재판부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일부 혐의를 무죄로 선고하고 추징금 단 사백칠십삼억(473억) 금(金)만을 인정하였다. 특히 핵심 민간업자 남 공자(남욱)에게는 추징금 영(0) 금이 선고되었다.
청류파는 정 법무부 장관(정성호)이 검찰에 외압을 행사하여 조조의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의로 항소를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항소 포기 결정이 내려진 지 닷새 만에 노 장군은 사의를 표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항소 포기의 전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다만 자신에게 반기를 든 부하 검사들에 대한 징계를 멈춰달라 청할 뿐이었다.
청류파의 김민수 최고위원은 노 장군의 침묵을 두고 "항소 포기의 진상을 밝히지 않은 퇴임사는 퇴임사가 아니다. 이는 실은 '은밀한 약속을 보장받은 영전사(榮轉辭)'로 느껴진다"며 조조 조정의 검은 거래를 의심하였다.
불이익변경의 원칙과 남 공자의 청원
노 장군의 항소 포기로 인해 1심 판결은 사실상 확정되었다. 이는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즉, 피고인(민간업자)들만 항소한 상황에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1심보다 무거운 형량이나 추징금을 선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남 공자였다. 그는 1심에서 추징금 영 금이 선고되었기에, 이제 검찰이 범죄 수익이라며 동결(추징보전)해둔 수백억 금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을 풀어달라고 검찰에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남 공자는 검찰이 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국가를 상대로 배상(賠償)을 청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청류파 대변인 박성훈은 이 사태를 두고 탄식하며 논평했다.
"추징액 영 금이 확정되자마자 돈부터 챙기려는 저 파렴치한 모습에 백성들은 경악한다. 검찰의 항소 포기가 낳은 적반하장이다!"
서원의 태수(太守, 시장) 신상진은 이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여, 검찰이 동결해 둔 이천칠십억(2,070억) 금에 대해 서원시가 민사상 가압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허나 이미 범죄자들이 재산을 처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에, 피해 회복은 난망(難望)한 지경에 놓였다.
사법부 장악의 야심, 대법관의 증원
조조의 탁류파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법부 자체를 조조의 통제 아래 두려는 대담한 계책을 내놓았다. 바로 대법관(大法院官)의 수를 현재의 14명에서 26명으로 대폭 증원하고, 대법원의 최종 판결까지도 헌재에서 다시 심리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제(재판소원제) 도입을 추진한 것이다.
청류파의 주진우 의원은 이를 '이재명의 사법부 장악' 시도라며 날을 세웠다.
"조조가 다음 임기 중 대법관 수십 명을 새로 임명하여 사법부마저 발밑에 두겠다는 독재적 발상이다. 이는 세계 최초의 4심제를 만들려는 것이니, 법치 체계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실제로 조조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敗戰)을 겪은 직후 , 이 사법 개혁안을 급속도로 추진하였다. 이는 사법부 판결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적 압박으로 해석되었다.
탁류의 법이 백성에게 미치는 교훈
청류파의 비판은 조조의 모든 행보가 "조조 1인 면죄부를 위한 사법 쿠데타"라는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이 모든 일은 후대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권력자가 법을 자신의 방패로 삼거나, 혹은 자신의 목적에 맞게 법을 고치려 할 때, 그 피해는 결국 천하의 백성과 국가의 근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노 장군의 뼈아픈 퇴임과 남 공자의 추징금 면제는, 사법부의 독립성이 무너지고 공정성이 훼손될 때 범죄 수익 환수와 같은 정의의 실현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실록으로 기록되었다. 손권은 멀리서 이 사태를 관망하며, "탁류가 아무리 거세도 강물은 결국 바다로 흘러갈 뿐, 깨끗한 물줄기(淸流)를 완전히 끊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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