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스캠(사기) 범죄가 인공지능(AI) 기술과 기업형 운영 구조를 기반으로 급속히 확장하며 세계적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진단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김다은 상지대 경찰법학과 교수는 14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한국국제조직범죄학회 심포지움에서 "AI 도입 이후 스캠 범죄의 확산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고 말했다. 딥페이크·합성 신원 기술을 활용한 초기 신뢰 형성, 자동화된 계정 탈취, 대량 상호작용 시스템이 결합하면서 범죄 수행 비용이 크게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AI가 스캠 산업의 확장성을 사실상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 됐다"고 했다.
기술 발전과 동시에 방어역량의 구조적 한계도 지적됐다. 스캠 공격은 규제 없이 진화하지만, 정부와 기업은 책임·승인 절차에 따라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비대칭 구조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방어가 한두 박자 뒤처지면서 스캠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국가 간 역량 격차는 범죄 확산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디지털 전환은 빠르게 이뤄지는 반면, 이를 운영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국가에선 단속 공백과 부패가 결합해 스캠 단지가 자리 잡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캄보디아 사례를 언급하며 "현지 경찰이 장비·예산 부족으로 기본 단속조차 어렵고, 그 취약성이 범죄를 재생산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스캠이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기업형 구조를 갖춘 산업으로 변했다고 분석했다. 다국어 스크립트, 피해자 선별 알고리즘, 자금세탁 체계, 강제 통제가 가능한 노동력 시장 등으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고, 모집·감금·교육·정산·세탁·재투자를 한 공간에서 처리하는 수직통합 운영 방식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피해자들이 하루·일주일 단위로 스크립트를 배부받아 일괄적으로 메시지를 전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인프라가 외부 범죄자에게 판매·임대되는 방식으로 변하면서 스캠이 '서비스 산업'으로 확장됐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IT 업계의 플랫폼 서비스 모델(PaaS)과 유사한 형태로, 도구·매뉴얼·튜토리얼만 구매하면 누구나 스캠에 뛰어들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는 "즉흥적 사기가 아니라 매뉴얼 기반의 대량생산 범죄"라며 프로그램 제작자에 대한 제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스캠이 안보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보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동남아 기반 스캠 조직의 출신국이 99개 이상으로 파악될 정도로 초국가성이 강하다"며 "해킹·인신매매·감금·자금세탁이 얽힌 복합 범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량 아웃바운드 접촉, 사회공학 기반 시나리오, 역외 자금세탁 등은 일반 기업의 마케팅·금융 기법이 범죄에 적용된 사례"라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스캠 단지가 형성되는 조건으로 ▲정부 영향력 제한 ▲외국인 투자지대·국경지대 등 치안 공백 ▲기본 인프라 확보를 꼽았다. 그는 코로나 시기 헐값 부동산이 중국계 자본에 매입돼 도심까지 스캠 단지가 확산된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에서도 지방 소멸 지역이나 공실 부동산이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선 스캠 단지에서 발생한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사기 실행자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자·가해자 구분 문제도 제기됐다. 심민규 나사렛대 교수는 "스캠 공장에서 나온 이들을 일률적으로 사기 공범으로 볼 수는 없지만, 반대로 피해자인 척 가담하는 사례도 있어 피해자성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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