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부 기능 정지)이 12일 밤(이하 현지시간) 43일 만에 종료됐다.
내년 1월 30일까지 연방정부를 가동할 임시예산안이 지난 10일 상원 통과에 이어 이날 하원에서도 가결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까지 마치면서다.
민주당의 중도파 상원의원들이 이탈하면서 예산안이 통과된 만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뒀다"고 선언했으나 내년 중간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 상처뿐인 승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바마 케어' 보조금 이견으로 10월1일 시작 최장 기록
항공편 차질·저소득층 식비지원 중단 위기·공무원 급여 중단 등 피해 속출
미 연방하원은 12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상원에서 넘어온 단기 지출법안(임시예산안) 수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22표, 반대 209표로 가결했다.
이날 하원에서 통과된 임시예산안은 지난 10일 상원이 수정 가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오후 10시24분께(미 동부시간) 의회에서 넘어온 임시예산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셧다운이 43일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셧다운은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있었던 기존의 역대 최장 기록(35일)보다 8일 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산안에 서명한 뒤 "오늘은 멋진 날(great day)"이라고 밝힌 뒤 사태의 책임이 야당인 민주당에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민주당)은 2만편 이상의 항공편 취소 또는 지연을 야기했고, 100만명 이상의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지원이 필요한 수많은 미국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셧다운을 감수하는 명분으로 삼고 요구한 건강보험개혁법(ACA·Affordable Care Act·일명 오바마케어) 보조금 연장을 두고 "갱단, 교도소, 정신병원 출신 불법 체류자들에게 1조5천억 달러를 지급하길 원했다"며 "민주당 의원들이 정부를 셧다운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는 결코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다"며 "다가오는 중간선거와 다른 선거에서 그들(민주당)이 우리나라에 한 일을 잊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민주 분열…중도파, 공화당 타협안 수용
'오바마 케어' 보조금 연장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 간 이견으로 지난달 1일 시작된 셧다운이 장기화하면서 미국 국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특히 이달 들어 항공관제사 인력 부족으로 미국 주요 공항에서 항공편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지연됐으며 영양보충 지원프로그램(SNAP) 등이 재정 고갈 위기에 처하면서 저소득층 4천200만명의 밥줄이 위태로워졌다.
대다수 연방정부 공무원은 이 기간 급여가 중단됐을 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해고 예고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고용 동향 등 통계가 제때 나오지 않아 경제 정책 수립에도 차질을 줬다.
기약 없이 길어지던 셧다운이 급반전을 맞은 것은 상원에서 민주당의 중도파 의원 8명(무소속 1명 포함)이 공화당에 가세하며 민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끝냈기 때문이다.
이번 임시예산안은 내년 1월 30일까지 기존 수준으로 연방정부·기관의 자금을 임시 복원한다.
이에 따라 셧다운 장기화에 따른 재원 고갈로 지난 1일부터 중단된 저소득층 식비 지원 프로그램(SNAP)의 보조금 집행이 재개돼 올해 회계연도 종료 때까지 중단되지 않는다.
또 연방 공무원들에게 밀린 급여를 지급하고, 셧다운 기간 자체 예산으로 연방정부의 보조금 공백을 메운 주(州) 정부에 자금을 보상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 등을 이유로 추진했던 공무원 대량 해고도 중단된다.
공화·민주, 오바마케어 놓고 힘겨루기 이어갈 듯
보험료 폭등시 내년 중간선거 민심 요동
트럼프 대통령이 셧다운 사태를 마무리 지으며 '승리'를 선언했지만 내년 11월 연방 상·하원의 다수당을 결정할 중간선거까지 이길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 핵심은 '오바마 케어' 보조금 연장 여부에 달렸다. 이번 합의안에는 민주당이 셧다운 명분으로 삼았던 '오바마 케어' 보조금 연장안에 대한 상원 표결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즉, 향후 공화당과 민주당은 오바마 케어 보조금 연장을 놓고 힘겨루기를 이어가게 됐다.
민주당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며 전면전을 예고했다.
'오바마 케어' 대상자 중 보조금을 받는 국민은 2천만명 이상으로 보조금이 중단되면 이들의 건강보험료는 2∼3배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보조금 지급 종료로 보험료가 폭등한다면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심이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의 건강보험 혜택이 불법 이민자들과 보험사들에 흘러 들어가고 있다며 보조금 연장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신 건강보험 개혁안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예산안 서명식에서 "그 막대한 돈을 보험사가 아닌 직접 국민들에게 지급해 스스로 건강보험을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오바마 케어'라는 재앙보다 훨씬 더 좋고 훨씬 더 저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많은 민주당 의원은 '오바마 케어' 보조금 문제로는 전투에서 패했을지라도 공화당이 이 사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내년 중간선거에서 역풍에 직면한다면 자신들이 더 큰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아가 내년 1월까지의 임시 예산안이 처리됐을 뿐이어서 향후 본예산 협상 과정에서 여전히 여야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
CNN은 이번 임시 예산안 통과로 내년 전체 예산을 확보한 "일부 프로그램은 향후 정치적 분쟁에서 면제될 것"이라면서도 "1월 30일 새로운 예산안 마감 시한을 설정"하고 있어 예산안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셧다운 끝나자 '엡스타인' 리스크…트럼프 또 다른 악재
셧다운 사태가 끝나자 마자 '엡스타인' 리스크가 불거진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재다.
미 하원 감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제프리 엡스타인의 범행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에 가담했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엡스타인의 e메일 3통을 공개했다.
2011년 엡스타인은 여자친구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에게 보낸 e메일에서 여자친구이자 공범인 길레인 맥스웰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아직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피해자가 "그(트럼프 대통령)와 함께 내 집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단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짖지 않은 그 개가 트럼프라는 것을 알아두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이에 맥스웰은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답장했다.
현재 교도소 복역 중인 맥스웰은 지난 7월 토드 블랜치 법무부 부장관과의 면담에서 "대통령이 부적절한 상황에 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범행에 직접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엡스타인은 체포되기 몇 달 전인 2019년 1월 울프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당시 현직이던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그 소녀들에 대해 알았다"(knew about the girls)고 말했다.
엡스타인의 성착취 범행 피해자에는 미성년 여성들이 여럿 포함됐으며, 이메일에서 언급된 '소녀들'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원 감독위 민주당 간사인 로버트 가르시아(캘리포니아)는 성명에서 이번에 공개된 이메일이 "백악관이 또 무엇을 숨기고 있을지에 대해, 또 엡스타인과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명백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민주당은 셧다운과 매우 많은 문제에서 얼마나 형편없이 대처했는지에 대해 시선을 돌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 하기 때문에 엡스타인 사기극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며 "아주 나쁘거나 멍청한 공화당원만이 그 함정에 빠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엡스타인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시선을 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며 "관련된 공화당원은 오직 국가를 재개하고 민주당이 초래한 막대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악관도 민주당의 이메일 공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업적들로부터 주의를 돌리려는 불성실한 시도"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중상모략할 가짜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해 이메일을 선택적으로 유출했다"고 반박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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