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문제는 역시 경제 문제와 직결돼 있다.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경제협력체답게 ‘인구’를 전면에 올려 놓았다. 저출산과 고령화, 도시 집중은 더 이상 몇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전체의 경제협력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로 인식된다.
‘경주선언’은 이를 공식 의제로 채택하며 ‘APEC 인구 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인구의 구조적 변화는 한 국가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고령사회 대응 시스템 구축, 인적자원 순환 강화, 의료 및 기술혁신 촉진 등 협력 방향이 함께 제시됐다. 이에 따라 인구 문제는 복지나 출산 장려 차원의 행정을 넘어 노동시장과 교육, 주거, 보건을 포괄하는 거버넌스 과제로 부상했다.
우리는 이 흐름의 한가운데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고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나라가 바로 이번 APEC 주최국 한국이다. 정상선언문은 “인구 구조 변화가 가져오는 광범위한 경제적 영향이 세대 간 정책을 통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이는 우리 행정의 현주소를 투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저출산 대책 예산은 수십조원에 달하지만 출산율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원인 중 하나는 명확하다. 출산·보육·청년·고령 정책이 부처별로 나뉘어 추진되는 행정의 분절성 때문이다. 예컨대 출산은 복지부, 보육은 여가부, 주거는 국토부, 일자리는 노동부가 담당하며 정책의 연속성을 단절하고 있다. 인구는 어느 한 부처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 전 분야의 연속선상에 놓인 흐름임에도 우리 행정은 여전히 단기 사업과 예산 중심의 구조에 머물러 있다.
경주선언이 제시한 인구 협력 프레임워크는 이런 분절 행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인구 감소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도시의 기능, 노동의 질, 지역의 존속을 좌우하는 생태적 변화다. 특히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인구 행정은 지역 균형, 산업, 복지 정책이 맞물려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선언문이 강조한 ‘세대 간 정책과 협력적 대응’은 이러한 복합 행정을 지향한다.
인구정책이 국제협력 논의의 중심이 된 것은 인구의 구조적 변화가 생산과 소비, 복지와 교육, 세금과 세대 관계 전반을 뒤흔드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인구 문제에 대한 통합적 행정 운영에 있어 해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싱가포르는 국가인구재능부(NPTD)를 통해 인구·고용·이민·가족 정책을 통합 운영하며 정책 간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이번 경주선언은 APEC 회원국들이 이러한 통합적 접근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제 행정은 단순한 지원의 역할을 넘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경주선언의 메시지는 ‘협력’보다 ‘예측’에 가깝다. 인구 이동, 출산, 고령화, 건강, 돌봄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합해 세대별 변화를 읽고 그 결과를 정책으로 환류시키는 인구 데이터 행정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 행정이나 디지털 전환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과 삶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인구절벽은 통계의 곡선이 아니라 행정의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다.
인구절벽은 국경을 모른다. 그 현실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출산율 몇 퍼센트’라는 숫자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행정,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정책, 데이터를 읽는 통찰이 없다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예측보다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행정의 시간표를 미래로 옮겨 놓는 일, 그것이 경주선언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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