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1764–1845)가 남긴 '유예지'에는 오늘날 거의 잊힌 악기, 생황(笙簧)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생황은 한국 전통음악에서 오랫동안 부전공 악기나 실험적 창작 도구로만 존재해왔으며, 독립된 음악적 중심으로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11월 26일 서울 돈화문 국악당에서 열리는 '생황의 향악화 II – 유예지'는 이 오래된 음색을 현대적 감각으로 불러내는 시도로 주목받는다.
공연을 이끄는 생황연주자 홍지혜는 작곡가 김대성과 함께 '유예지' 속 생황자보를 면밀히 연구하고 해독했다. 이를 통해 전통 생황 선율을 복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현대적 창작 레퍼토리를 개발했다. 홍지혜는 “전통이란 과거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시대의 언어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이번 프로젝트가 복원이 아닌 살아 있는 전통을 보여주려는 시도임을 강조한다.
'유예지' 속 생황자보는 현존하는 유일한 전통 생황 악보로, 지금까지 학술적 검토는 있었으나 실제 연주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공연은 고악보를 실제 연주로 되살리는 첫 사례로, 학술적 연구가 음악적 체험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전통 악보 속 음표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공연은 전통 생황 복원 무대에서 시작해, 그 선율이 현대적 감각 속에서 재탄생하는 과정을 다섯 편의 창작 작품으로 이어간다. 복원에서 창작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생황의 본래 정체성과 현대적 확장의 가능성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는 생황이 오늘날 한국 음악에서 가진 의미를 새롭게 제시하는 기회가 된다.
현대 생황은 주로 창작 음악 장르에서 활용되며, 한국적 생황어법에 대한 논의는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런 맥락에서 한국적 생황 음악의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선도적 시도로 평가된다. 관객은 전통 악보를 기반으로 한 복원 연주와, 이를 바탕으로 한 현대적 해석을 함께 감상하며, 악기의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시간을 체험하게 된다.
홍지혜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생황을 단순한 부전공 악기에서 벗어나 독립적 주류 악기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그녀는 “생황이 단지 실험적 악기로 남지 않고, 한국 전통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가진 악기로 서도록 레퍼토리와 어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곧 전통 악기의 현대적 재발견이자, 국악계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시도로 연결된다.
이번 공연은 학술적 연구와 연주 레퍼토리 개발 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열어둔다. 생황의 역사적 가치와 음악적 잠재력을 확인하는 동시에, 현대 창작음악의 장르적 실험까지 포괄하는 장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관객들은 이번 무대를 통해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특히, 한국 전통음악 속 생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시도라는 점에서 눈여결 볼 만 하다. 관객들은 잊혀진 악기의 음색을 듣고, 전통과 현대가 만나 새로운 장르적 경계를 모색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생황은 이번 무대를 통해 다시 중심에 서며, 한국 음악의 미래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편, 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시대와 함께 호흡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공연은 전통 음악 연구자와 연주자들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전통 악보의 복원 과정과 현대적 재해석이 결합된 사례는, 향후 생황뿐 아니라 다른 소외된 전통 악기들의 부흥 가능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유예지' 속 생황 선율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음악적 창작과 소통의 출발점으로 자리하게 된다.
'생황의 향악화 II – 유예지'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전통악기의 현대적 재발견이라는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 생황의 선율이 현대 창작음악과 만나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만들어내는 순간, 관객들은 한국 음악의 전통과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시대와 호흡하는 순간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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