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세상에 나오는 작품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강산 칼럼] 세상에 나오는 작품들

문화매거진 2025-11-12 12:22:59 신고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그림을 전시하는 일은 늘 그렇게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예전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던 한 독립 서점에서 전시했을 때도 그랬다. 그곳은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고택이었다. 세 채의 한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한 채는 아동서적만 다루었고, 다른 한 채는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는 일반 서가였다. 마지막 한 채는 넓은 매대가 있어 책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독서 모임도 열리는 듯, 차와 큰 책상도 마련되어 있어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 책 전시 공간의 벽면에는 이미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지역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세 채의 서점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좋은 곳에서 내 그림을 전시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나는 용기 내어 말했다. “사장님, 혹시 제 그림 걸어도 될까요?” 책을 읽고 있던 사장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한참 바라보셨다. 나중에 들으니 그때 나를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다짜고짜 그림을 걸겠다는 낯선 사람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사장님의 허락을 받자마자 사장님 마음이 바뀔세라 부리나케 그림을 싸 들고 와 그 공간의 그림들을 내 작품으로 싹 바꾸어 걸었다. 그렇게 나의 첫 전시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 아산시 소재 카페 그린브리즈에 전시된 나의 작품들 11.6. ~ 12.17. / 사진: 강산 제공
▲ 아산시 소재 카페 그린브리즈에 전시된 나의 작품들 11.6. ~ 12.17. / 사진: 강산 제공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직장인으로서 그림 그릴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핑계 같지만, 정말 바빴다. 다작하진 못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 그림은 확실히 변했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색이 달라졌다.

제주에서는 주로 과거를 회상하고 정리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이후에는 화가 난 상태에서 그린 그림이 많았다. 너무 화가 나서 주체할 수 없을 때, 감정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일까, 그 그림들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그러던 중 이 지역에서 좋은 작가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분들은 내 작품을 칭찬해 주셨다. 그 순간, 예술가들은 참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내 믿음이 더 확고해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은가. 내 그림이 자본 시장에서는 혹평받았지만, 진짜 작가들에게서 인정받으니 다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렇게 자신감이 충만하던 어느 날, 브런치를 먹으러 한 카페에 들렀다. 그곳은 넓고 분위기가 좋았다. 벽마다 커다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나는 또다시 그때 그 말을 꺼냈다. “제 작품 걸 수 있을까요?” 카페 사장님은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셨다. 몇 년 전 제주 독립서점 사장님의 그 표정이었다. 데자뷔 같았다.

▲ 아산시 소재 카페 그린브리즈에 전시된 나의 작품들 11.6. ~ 12.17. / 사진: 강산 제공
▲ 아산시 소재 카페 그린브리즈에 전시된 나의 작품들 11.6. ~ 12.17. / 사진: 강산 제공


나는 미리 말했다. “제 그림은 예쁜 풍경화는 아닙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괜찮아요.” 하셨다. 역시나 나는 사장님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그림을 잔뜩 싸 들고 와서 걸었다. 그렇게 내 새로운 작품들이 세상에 나왔다.

어떤 책에서 읽은 말이 생각났다. “혼자만 갖고 있는 작품은 쓰레기다.” 카페에 건 순간, 내 그림은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그림에 있어서는 정말 적극적이시네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작가님들께, 특히 아직 이름 없는 무명 화가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완벽한 때를 기다리느라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너그럽고, 우리의 진심을 알아봐 주는 눈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그러니, 나처럼 그림을 싸 들고 나가기를 추천한다. 그림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비로소 살아나니까.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