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1월 반포심산아트홀에서는 서로 다른 전통의 기악음악이 공명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허튼 가락, 조화된 춤'에서는 한국의 산조와 유럽의 바로크 모음곡이라는 두 장르가 나란히 배치되며, 각각의 구조적 특징과 음악적 서사를 비교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
한국 산조는 조선 후기부터 발전한 기악음악으로,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점차 변화하며 즉흥적 표현을 중심으로 한다. 장단의 변화 속에서 선율은 유연하게 변주되고, 연주자의 감정과 호흡이 그대로 음악 속에 투영된다. 산조의 즉흥성은 연주자가 곡을 매번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며, 관객에게도 음악적 긴장과 해방의 순간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산조의 장단 구조는 일반적으로 진양조에서 시작하여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진적 변화는 음악적 서사와 연주자의 개성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한다. 선율적 특징 또한 핵심적이다. 장음과 단음, 음정 사이의 미묘한 흔들림과 장식음, 시김새 등을 통해 연주자는 자신의 정서와 기교를 드러내며, 청중은 이를 내적 공감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유럽 바로크 모음곡은 구조적 안정성과 균형을 중시한다.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반드, 지그 등 각 악장은 명확한 악장 구성과 춤곡적 리듬을 통해 질서와 조화를 강조한다. 연주자는 장식적 요소와 표현적 해석을 더하지만, 곡의 구조적 틀을 넘어서는 즉흥적 변화는 제한적이다. 산조의 유연성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허튼 가락, 조화된 춤'에서는 가야금의 추현탁과 생황 연주자 한지수가 산조를, 아렌트 흐로스펠트의 쳄발로와 장유진의 첼로가 바로크 모음곡을 맡아 각각의 음악적 세계를 표현한다. 연주자들은 각 전통의 음악을 독립적으로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필립 글래스의 'Floe from Glassworks'를 함께 연주하며 현대적 음악 언어 속에서 두 전통의 공명을 실험한다.
공연의 핵심적 의미는 산조와 모음곡의 즉흥과 구조, 선율과 장단의 대비와 공명에 있다. 산조의 자유로운 장단과 선율적 유연성은 연주자 개개인의 감정과 선택에 따라 음악적 결이 달라진다. 모음곡은 정형적 틀 속에서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장식음과 악장 간 대비를 통해 음악적 긴장을 조율한다. 두 장르를 나란히 배치하면, 음악적 구조와 즉흥성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산조의 음악적 서사는 내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개된다.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진행되며 발생하는 긴장과 해소는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경험된다. 바로크 모음곡은 외적 구조 속에서 음악적 완결성을 유지하지만, 각 악장의 선율적 장식과 리듬 변화를 통해 연주자의 개성이 드러난다. 산조와 모음곡의 이러한 차이는 서로 다른 전통이 만들어낸 음악적 사고와 감각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두 전통의 교차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산조의 즉흥성과 장단 변화는 현대 음악의 시간적 실험과 연결될 수 있으며, 모음곡의 구조적 안정성과 리듬적 규칙성은 현대적 앙상블에서 질서와 조화의 기준으로 작동한다. '허튼 가락, 조화된 춤'에서 두 전통이 필립 글래스의 현대 작품 속에서 만나며, 음악적 공명과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유다.
결국 공연은 음악을 문화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고하고 느끼는 과정으로 확장시킨다. 산조와 바로크 모음곡이 나란히 놓인 무대에서, 즉흥과 구조, 동서양의 음악적 감각, 개인과 공동체의 경험이 교차하며 음악적 사고의 폭을 넓힌다. 전통의 경계가 교차하고 조화를 이루는 순간, 우리는 음악을 통해 시간과 공간, 감각과 역사, 그리고 인간적 공명을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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