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김주현 기자] 사전에서는 ‘불안’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함’,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몸이 편안하지 아니함’으로 정의한다. 21세기 현대인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감정은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일쑤이지만, 전혜련 작가의 불안은 관객으로 하여금 되려 편안함을 자아낸다. “불안, 우울이라는 감정에서 파생된 내면의 자아를 잔혹동화같은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전혜련 작가를 문화매거진이 만났다.
“저는 몽환적인 이미지 속에 솔직한 감정과 상처를 은유적으로 담아낸, 저만의 세계관을 작품으로 선보이고자 해요. 불안은 누구나 겪지만 받아들이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이잖아요. 저는 이 감정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감정으로 보거든요. 초현실적인 이미지와 상징적 오브제를 통해 불안뿐만 아니라 이상, 욕망 등의 다양한 감정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요.”
전혜련 작가가 ‘불안’을 마주하기까지는 쉽지않은 과정이 존재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다른 길을 걷기도 했단다. 그러나 늘 마음속에는 ‘이 길이 정말 나에게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고.
“특히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건 정말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어요.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중학교 강사 일을 병행했는데, 그때 경험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것은 내 진심을 외면하는 행동’이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당시의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결국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붓을 잡아 그림을 그렸어요. 임용을 준비할 때 저는 항상 불안했고 오래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불안이나 망설임 대신 확신과 몰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다. “현실적인 타협으로 인한 선택이 아닌, 진정으로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언제나 그림을 그릴 때”라는 것. 시행착오를 거쳐 ‘진실하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작업’임을 깨닫고 지금껏 작가 생활을 이어오게 됐다.
평소 예민하고 걱정이 많아 불안감을 잘 느끼는 성격도 한 몫 했다. 그런 본인의 모습이 싫어 ‘나는 왜 불안한가’, ‘이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할 것인가’란 질문을 품게 되었고, 그 고민이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졌다.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한 작가의 용기가 빛나는 대목이다.
“미술은 결국 저에게 대나무숲 같은 존재죠. 아직도 제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거나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어렵기는 해요. 하지만 이런 감정들을 그림을 통해선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할 수 있어요. 이 내면의 진실을 밖으로 꺼내놓을 때 마치 고해성사하듯 비로소 내 자신을 마주할 수 있거든요.”
그의 ‘고해성사’를 누군가 보고 듣기에 더 의미 있는 행위로 남는다. 전혜련이 작가로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작품을 사랑해주시는 관객’이라고 했다.
“작품을 통해 누군가 공감하고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도 깊은 감동을 받아요. 그 감정들이 쌓여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결국 제 작업은 제 개인적인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그가 고민을 거듭해 꼽은 대표작도 위의 이야기와 맥을 나란히 한다. ‘기나긴 밤의 끄트머리’, ‘이불밖은 위험해’, ‘Stay with me’를 골랐다.
“‘기나긴 밤의 끄트머리’는 제 내면을 진솔하게 담아낸 첫 창작 작품이자 120호 대형 작업입니다. 물, 나무, 달 등 제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상징적 소재들이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이는 이후 작업의 방향성을 결정 지은 토대를 마련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불밖은 위험해’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어구로 현재까지도 밈(meme)으로 종종 쓰이는 문장인데요. 당시엔 귀차니즘을 표현하는 문장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밖에 나가지 않고 항상 이불 안에 있어야 밖에서 일어나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아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어요.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먼저 떠올랐던 것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인 침대에서 그동안 키웠던 개들과 함께 웅크려있는 이미지였어요. 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동물 영상을 봅니다. 자기 전, 일어나 후 동물 영상을 볼 정도로 동물에 대한 애정이 깊은데요. 이렇게 하루의 처음과 끝을 동물과 함께 하는데, 이는 모두 침대에 누워있을 때 이루어져요. 따라서 ‘침대’라는 공간을 통해 전반적인 작업의 주요 주제인 ‘불안’을 나타내고자 했어요. ‘바다’는 그동안 많은 작업에 다룬 소재인데, 이 작품에서는 ‘현실 사회’를 의미합니다. 저는 집 밖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항상 내면에 있거든요. 또 사회인으로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회인의 가면을 쓰고 타인의 눈치를 보며 행동해야 하죠. 이것들은 외부 활동에 대한 압박과 불안감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현실 속 고난과 시련은 작업 속 상어로 표현돼요. 즉 ‘이불 밖은 위험해’는 침대 이불 속에 있을 때 느끼는 안정감 및 동물에 대한 애정과 함께 현실 도피적 내면을 바다와 침대라는 소재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Stay with me’에는 인어가 나무 위에 올라 휴식을 취하며 달을 올려다보고 있어요. 지쳐버린 인어 근처에는 표범이 홀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걷는 삶의 긴 여정에서 지치고 외로울 때 그 누구든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위로받을 때가 있죠. 이전 작업에서는 주로 물이나 낮은 곳에서 머물고 있는 인어를 높은 나무 위로 배치하여 달과 가까워지게 함으로써 보다 이상에 가까워지고 싶은 강한 욕망을 표현했어요. 나무 위 표범은 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동물로,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한 내면의 강인함을 상징하며 나약해진 인어의 마음속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이기도 해요.”
불안이라는 다소 어두운 감정을 다루고 있지만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내면의 희망과 아이 같은 순수함’이 공존하는 것이 전혜련 작가의 매력이다. 그래서 때로는 잔혹동화처럼 보이지만, 따뜻한 치유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묘한 매력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 불안이 어쩌면 아주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관객분들께서 제 작품 세계를 단순히 어둡게만 느끼기보다는 그 안에 깃든 작은 희망의 빛을 발견해주셨으면 해요. 제 작품으로 어떤 긍정적 감정을 느끼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아요. ‘어른 아이 같은 작가’란 수식어도 좋겠네요. 어른으로서 세상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아이처럼 순수한 이상을 간직한 채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작가로 남고 싶거든요.”
전혜련의 2025년은 누구보다 바쁘고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유독 이번 해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간 느낌”이라고 다시 입을 연 그는 “상반기엔 전시 활동과 논문 작성 등으로 바쁘게 보냈고, 하반기엔 많은 작업에 몰두했다”며 “새로운 작품을 계속 만들어야 하다 보니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쌓여가는 작품 개수에 뿌듯하기도 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불안을 껴안은 채 힘차게 달려갈 앞날을 예고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올해 연말에는 코엑스에서 열리는 ‘2025 서울 아트쇼’에 참여합니다. 2026년 상반기에는 서울 신라 호텔에서 열리는 ‘Unknown Vibes 아트페어’, 해운대 ‘블루아트페어’에 참여하고 제 개인전도 삼각지 갤러리백룸에서 열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단체전]
2025 클루노브 미대생 작가 공모전, 서울
2025 곽재선문화재단 제3회 아트공모전 '복 주는 화사전', 서울
2025 지지투갤러리 신진작가 전시 공모전, 서울
2024 Echosde l'âmecoréenne, GalerieLe Cerisier, 파리
2024 예술의전당 청년미술상점, 서울
2023 CAAF 상생아트페스티벌, 고양
[작품 소장]
지지투갤러리
[수상 및 선정]
2023 울산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입상, 울산문화예술회관
2018 44회 부산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우수상, 부산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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