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2012년 9월 2일, 도쿄도 미나토구 롯폰기의 한밤 중이었다. 클럽 이벤트가 무르익던 오전 3시 40분쯤, 음악과 조명이 춤추는 홀 안으로 복면이나 선글라스를 쓴 남성 10명이 불쑥 난입했다. 그들은 VIP룸에 있던 음식점 경영자 후지모토 료스케(31)을 파이프로 무차별하게 폭행했다.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아 후지모토는 두개골 내 손상으로 사망했고, 현장에 있던 수백여명의 사람들은 그 참혹한 순간을 인지하기도 전에 사태가 끝나버렸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단순한 클럽 난동이 아니었다. 폭력조직의 표적, 그리고 공개된 범죄의 위협이라는 차원에서 일본 사회에 폭력집단 한구레(半グレ)의 존재를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사실 한구레 집단에 의한 범죄는 2012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한구레는 2010년 스모의 전(前) 요코즈나(챔피언)인 아사쇼류나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에비조의 폭력 사건에도 관여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2011년 12월에는 야쿠자 조직원을 폭행하는 대담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롯폰기의 한 음식점에 한구레로 추정되는 조직원 20여명이 밀고 들어와 가게 안에 있던 야마구치구미 계열 간부 등 4명을 맥주병으로 폭행하고 도주하기도 했다.
‘한구레(半グレ)’는 일본에서 흔히 ‘반(半)이라 불리는 깡패(グレ/愚連隊) 형태’의 합성어로, 한국적 의미의 ‘양아치’ 혹은 ‘불량배’와 비슷한 존재를 가리킨다.
한구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은 양키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양키(Yankee)는 미국인을 얕잡아 일컫는 일종의 멸칭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미국 사람들이 스스로를 양키라고 부르지 않는다.
양키는 원래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남북전쟁 당시에는 남부인이 북군 병사에 대한 모멸적 칭호로 썼으며, 그것이 다시 널리 미국인 일반을 가리키는 속칭이 되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인 체로키어로 겁쟁이라는 뜻의 엔키(enakee)에서 나왔다는 설, 영국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잉글리시’, 또는 프랑스어 ‘앙글레’가 변화한 말이라는 설도 있다.
양키가 일본에서 뜬금없이 불량청소년 혹은 양아치를 일컫는 말이 된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사카의 난바(難波)에는 미군기지가 주둔하고 있었다. 미군기지 주변에 자연스럽게 아메리카촌이 형성됐고 미군 물자들이 대량으로 유통됐다.
일부의 젊은이들이 알로하셔츠나 통이 큰 바지 등을 입고, 머리는 금발로 물들인 채 번화가 등을 어슬렁 거렸다. 당시는 반미감정이 상당했던 시기여서 미국문화에 철없이 빠져버린 젊은이들을 ‘양키’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불량청소년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로 정착한 것이다.
단순히 아메리카풍의 패션뿐만 아니라, 말끝마다 ‘~였던가’라는 뜻의 접미사인 양케 (~やんけ 오사카 사투리)를 사용했던 것도 양키라고 불리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 뒤, 폭력단 조직의 엄격한 규율이나 영속적 조직망과는 다른 유연하고 탈구조적인 불량집단이 등장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구레다.
이러한 집단은 조직폭력단(야쿠자)의 외연 아래 들어가지 않거나, 잠식되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폭력·금융·정보망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점에서 ‘준(準)폭력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한구레는 어떤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폭력단 조직이 쇠퇴하고 사회구조가 바뀌는 틈새에서 부상한 존재다. 법·경찰의 조직폭력단 단속이 강화되면서, 전통적인 조직폭력단의 영향력은 축소됐고 이에 따라 조직 밖 혹은 조직 뒤편에서 활동하는 새로운 양식의 폭력집단이 주목받았다.
이처럼 한구레는 양아치와 폭력단 조직의 경계 위에 자리한 ‘유사 폭력집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뉴스컬처 최병일 newsculture@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