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도시의 일상 속에서 음악은 종종 배경이 된다. 카페의 잔잔한 재즈, 거리의 버스커 사운드, 지하철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안내 멜로디까지. 그 소리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귀에 남지 않는다. 음악은 거기에 ‘있지만’, 우리는 거의 듣지 않는다. 늦은 가을, 서울 용산의 카페 흙에서는 익숙한 청각 경험을 낯설게 뒤집는 공연이 열린다. 플티가 주관하고 무지카 엑스 마키나가 선보이는 ‘기계장치의 음악’이다.
공연은 제목부터 묘하다. ‘기계장치의 음악’이라니, 기계가 음악을 만드는 건가, 아니면 음악이 스스로 하나의 장치가 되는 걸까. 실제로 무대에는 리코더와 테오르보 같은 고음악기의 숨결 위에 모듈러 신시사이저의 전자음이 포개진다. 그리고 여기에 동력 장치가 달린 사물들이 더해져 그 자체로 또 다른 악기가 된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이 서 있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악기로 변한다. 100여 개의 메가폰과 소리 오브제가 설치된 카페 안에서, 사람의 숨, 컵의 부딪힘, 공기의 진동마저도 음악이 된다.
‘기계장치의 음악’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잊어버린 ‘듣는다는 행위’의 복원이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는 오래된 악기를 다루면서도 가장 진보한 소리를 탐구하는 집단이다. 이들이 만드는 음악은 화려한 멜로디보다 ‘소리의 존재’ 자체에 집중한다. 바흐의 리코더 독주가 어느새 전자음의 잔향 속으로 스며들고, 중세의 선율이 기계의 리듬에 기대어 다시 살아난다. 과거와 현재, 인간과 기계, 음악과 소리의 경계가 무너지고, 남는 것은 오직 ‘귀를 여는 경험’뿐이다.
연출가 장병욱은 “악기뿐 아니라 공간과 사물, 그 안의 소리가 모두 하나의 공연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관객의 자리, 벽, 컵, 나무 의자, 심지어 카페의 공기까지 공연의 일부가 된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공간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평소에 지나쳤던 소리들이 그제야 제 목소리를 내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의 대표 윤현종은 기타리스트이자 테오르보 연주자,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음악의 시간성과 질감을 탐구해왔다. 함께 출연하는 리코더 연주자 김규리는 ‘숨으로 시간을 연주하는’ 아티스트이고, 모듈러 신스를 다루는 이호석은 전자음의 흐름을 통해 공간의 질감을 그린다. 세 사람의 음악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공연 안에서는 하나의 긴 대화처럼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 인간과 기계가 같은 문장 안에서 호흡한다.
‘기계장치의 음악’은 극장을 벗어나 일상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카페 흙은 그 여정의 첫 무대다. 흙과 뿌리, 싹이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시간의 층위가 겹쳐 있는 장소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는 이곳을 하나의 악기로 삼는다.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이 음악의 무대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소리를 지나쳐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도서관, 공장, 항구, 공원 등 앞으로 이 공연이 찾아갈 장소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소리의 기억’을 품고 있을 것이다.
‘기계장치의 음악’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을 남긴다. 음악은 이미 일상의 소리 속에 스며들어 있고,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의 공기 속에서 미세하게 울린다. 관객은 그 소리를 따라 천천히 공간을 되새기며, 일상 속에서도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듣는다.
※새로운 문화, 그리고 사람. ‘뉴컬에세이’는 예술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그 여운을 글로 옮기는 코너입니다. 공연, 전시,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 현상속에서 ‘지금 이 시대의 감성’을 발견합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