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MAO SPACE에서 열린 개인전 <Why Not?> 오프닝 현장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씨킴.
“예전에 그린 얼굴엔 귀를 그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엔 한쪽 귀를 그렸죠. 나는 절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런데 이제는 조금 들으려고요.”
이 짧은 고백 안에는 예술가 씨킴(CI KIM), 혹은 김창일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완전한 고집과 완전한 경청 사이, 아주 미세한 틈이 열렸다. 일흔 중반에 접어든 지금,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선언처럼 들렸다. 한쪽 귀는 타협이 아닌 ‘개방’의 은유였고, 그가 스스로에게 연 창 너머에는 오래 닫혀 있던 내면의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씨킴의 예술에 어떤 수식도 덧붙이지 않은 채, 그 자체로 마주하고 싶었다. 지난 9월 말, 상하이에서 열린 개인전 오프닝 현장.
관찰자로서 그를 지켜보았고, 짧지만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원고를 쓰기 전, 그가 걸어온 전시의 기록과 글을 하나씩 거슬러 읽으며 지난 발자취를 따라가보았다. 그리고 여러 공간에서 마주한 작품들에 대한 기억의 조각을 꺼내 맞추며, 그의 예술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상하이 MAO SPACE에서 열리고 있는 씨킴(CI KIM)의 개인전 <Why Not?> 전경.
‘유년의 즐거움’을 회수하는 법
김창일. 사업가이자 컬렉터, 갤러리스트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는 1999년부터 씨킴(CI KIM)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온 예술가다. 2003년 이후 거의 격년으로 개인전을 열어온 그는 드로잉과 회화, 설치, 조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매번 그 경계를 유연하게 확장해왔다. 그의 태도는 언제나 단호하다. “왜 안 되는데(Why not)?” 이번 상하이 개인전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 짧고 명료한 물음은, 그가 예술가로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다.
그가 다뤄온 재료들은 언제나 ‘보통’의 미술 재료 목록을 비껴간다. 토마토와 블루베리, 철가루와 목재, 시멘트와 브론즈, 일회용 플라스틱, 그리고 커피까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물질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긴장과 자연스러움이 공존하는 하나의 표면으로 결착된다. 버려진 것과 남겨진 것, 엉뚱한 조합과 즉흥적 붓질이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늘 유머를 잃지 않는다. 다만 그 유머는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생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일종의 탄성에 가깝다.
씨킴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동기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를 찾은 날, 갤러리 앞 야외 광장에서 우리는 한 ‘부드러운 조각’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이른바 ‘소프트 스컬프처(Soft Sculpture)’란 돌·금속·목재 대신 천이나 고무, 비닐 등 유연한 재료를 사용하는 조각을 뜻한다. 당시 조각을 전공하던 우리는 야외 조각이란 바람과 비를 견딜 만큼 단단해야 한다고 배워왔기에, 그 장면은 낯설고도 충격적이었다.
그날 마주한 작품은 천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바람과 비를 맞으며 색이 서서히 바래가던 그것은,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형태를 바꾸어가고 있었다. 작품에는 ‘I Have a Dream’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파격은 단순한 조형 실험을 넘어, 시간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 시도였다. 염(染)과 풍화, 마모와 변색, 세월이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는 그대로 품어냈다. 어쩌면 그의 ‘Why not?’ 정신은 그때 이미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통제할 수 없는 변화, 우연의 개입, 예상치 못한 결함을 예술의 언어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그의 긍정이다.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껴안는 방식으로서의 긍정.
긍정의 두 얼굴
씨킴의 태도를 떠올리다 보면, 문득 또 다른 작가가 스친다. 2016년, 브렉시트로 뒤숭숭하던 런던 트라팔가 광장. 공공미술 프로젝트 ‘네 번째 좌대(The Fourth Plinth)’ 위에 세워진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작품 ‘Really Good’은 7m 높이의 거대한 엄지손가락 하나로 광장을 압도했다. ‘네 번째 좌대’는 광장 한쪽의 빈 좌대에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주기적으로 전시하는 프로젝트로, 동시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 작품이 공개되자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작품 선정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그간 이 좌대에는 주로 이민, 전쟁, 장애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본 ‘Really Good’은 단순한 동의나 긍정의 제스처로 읽히지 않았다. 짙은 흑색으로 도금된 표면, 비정상적으로 과장된 비례, 미묘하게 뒤틀린 형태 속에는 낙관의 공허함과 불안의 그림자가 교차하고 있었다.
그 형상은 오래전 천안에서 마주한 씨킴의 ‘I Have a Dream’을 떠올리게 했다. 슈리글리의 엄지와 씨킴의 천 인형, 두 존재는 모두 ‘긍정’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균열이 있다. 하나는 과장된 손가락의 형태로 낙관의 불안을 드러내고, 다른 하나는 바람에 닳아가는 천의 결 속에서 희망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두 작가의 제스처는 닮아 있다. 그것은 세상을 버티기 위한 유머이자, 희망과 피로가 교차하는 아이러니한 생의 태도다. 그들에게 낙관은 구호가 아니라, 견디기 위한 방식이다. 웃음의 얼굴을 한 채, 세계의 모순과 마주하는 법. 그게 바로 그들의 ‘긍정의 두 얼굴’이다.
(왼쪽) CI KIM, The Pot-plantingⅡ, 2022, Painted bronze, 55×40cm (오른쪽) CI KIM, The Pot-plantingⅠ, 2022, Painted bronze, 57.5×45cm.
멈춰 있는 나무에서 자라나는 열매
그 시선은 또 다른 기억을 불러왔다. 2006년경, 한겨울의 베이징 지우창. 매서운 바람 속에서 본 한 그루 감나무가 지금도 선명하다. 잎이 모두 떨어진 가지마다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생태적으로는 불가능한 풍경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감이었다. 씨킴의 작업이었다.
감나무는 겨울이면 휴면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새 생명을 위한 에너지를 차곡차곡 비축한다. 겉으로는 멈춰 있는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는 여전히 자라고 있는 것들. 그 장면은 씨킴이 예술을 지속해온 방식과도 닮아 있었다. 그의 작업은 겉으로 단순하고 유쾌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미세한 감정과 기억, 시간의 층위가 켜켜이 숨 쉬고 있다.
그가 최근 자주 다루는 모티프는 무지개다. 어린 시절, 남산 너머 하늘에서 처음 본 무지개는 그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아름다움의 원형으로 남았다. 색은 그의 언어이며, 빛은 그의 문장부호다.
씨킴의 세계에는 두 단어가 공존한다. ‘꿈’과 ‘고통’. 그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꿈을 떠올리지만, 그 길 위에 고통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예술은 꼭 그래야만 하는가?”, “예술은 왜 다르게 할 수 없는가?” 그 질문은 회의가 아니라, 다시 빛을 틔우는 시작이다.
1 CI KIM, Untitled, 2025, Crayon and pencil on paper, 40.5×55.5cm. 2 상하이 MAO SPACE에서 열리고 있는 씨킴(CI KIM)의 개인전 <Why Not?> 전경. 3 CI KIM, Untitled, 2025, Acrylic and glue on canvas, 72.7×60.6cm.
상하이에서 울린 또 하나의 선언 <WHY NOT?>
지난 9월 22일, 상하이 MAO SPACE에서 씨킴의 개인전 <WHY NOT?>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최근 몇 년간의 실험이 응축된, 일종의 작업일지 같은 전시였다. 이곳에서 작품은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흔적처럼 존재한다. 즉흥적 붓질은 실수의 미학으로 승격되고, 재료의 충돌은 또 다른 질서로 수렴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작품은 ‘한쪽 귀가 달린 초상’이었다. 한쪽에만 그려 넣은 귀, 완전한 고집도, 완전한 경청도 아닌 그 미묘한 균형이 화면의 공기를 바꾸어놓았다.
오프닝 당일, 상하이에 제법 익숙한 나조차도 의심이 들었다. ‘정말 이런 곳에 전시장이 있다고?’ 좁은 골목 초입의 포스터와 작은 표식을 따라,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빵 조각을 쫓듯 걸었다. 골목 끝, 오래된 상하이식 벽돌 건물에 자리한 MAO SPACE에 도착하니 이미 입구 앞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예술가, 컬렉터, 현지의 문화 관계자들까지, 그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일흔 즈음의 JYP를 연상케 하는 풍채와 호방함, 그리고 디테일 하나하나가 자신을 대변하는 듯한 패션. 바로 씨킴이었다.
MAO SPACE는 상하이를 기반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꾸준히 운영해온 퍼플 루프 퍼블릭 아트(Purple Roof Public Art, PRPA)가 설립한 비영리 공간이다. PRPA는 2000년대 초부터 2년 주기로 전시를 교체하는 징안 스컬프처 파크(Jing’an Sculpture Park)를 기획·운영하며, ‘예술이 도시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도시의 구조 속에서 예술이 머무는 방식을 실험해온 이 기관의 방향성은, 이번 전시가 열린 장소의 성격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PRPA의 철학이 김창일(씨킴)의 궤적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그는 아라리오 갤러리를 통해 ‘예술이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오랫동안 실험해왔다. 동시대 미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천안 버스터미널 자리에 갤러리를 세우고, 그 일대를 예술의 거점으로 바꾸어낸 경험은 도시 재생과 예술 실천이 만나는 접점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상하이 전시는, 그가 구축해온 ‘도시와 예술의 상호작용’이라는 실험이 또 한 번, 다른 맥락에서 되살아난 자리로 읽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씨킴의 예술은 그가 만든 ‘아라리오(ARARIO)’의 역사와 분리해 읽기 어렵다. 천안역 앞, 동시대 미술과는 거리가 있던 도시에 갤러리를 세우며 그는 말했다. “기차를 타고라도 오게 만들겠다.” 나는 실제로 그 말을 실천하듯, 대학 시절 기차를 타고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시를 보러 다니던 세대다. 그 시절, 천안역 광장에 들어서면 도시의 공기부터 달라 보였다. 낯선 긴장과 생경한 활기가 공존하던 곳, 그곳이 바로 씨킴의 실험실이었다.
2005년, 그는 한국 갤러리 가운데 최초로 베이징에 진출했다. 중국 미술 지형이 급격히 달궈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후 2014 년, 그는 방향을 상하이로 틀었다. 예감은 정확했다. 그즈음 베이징의 공기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서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했지만, 동시대 미술이 생장하기에는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예술의 자유로운 확장은 이미 상하이로 옮겨가고 있었다.
올해로 아라리오의 중국 진출이 꼭 20년을 맞았다. 그 시간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팬데믹의 봉쇄, 도시 계획에 따른 이주, 젠트리피케이션의 압력 속에서도 그는 버텼다. 한때 열 곳이 넘던 한국 갤러리의 중국 진출 사례 중,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은 오직 아라리오뿐이다. 지난 3월, 아라리오는 황푸강변의 아르데코풍 건물 ‘수허하우스(SUHE HAUS)’로 거점을 옮겼다. 외관은 어딘가 뉴욕 첼시의 오래된 벽돌 건물을 떠올리게 했고, 그 안에는 홍콩 페더 빌딩처럼 여러 갤러리가 한데 모여든 풍경이 펼쳐져 있다. 지금 이곳은 상하이의 새로운 예술 생태계로 떠오르고 있다. 시간의 결이 남은 건축 속에서 서로 다른 예술적 에너지가 교차하고 있었다. 샹아트 갤러리(ShanghART Gallery), 탕² 익스체인지(TANG² Exchange), 더 패럿(The Parrot) 등 그날 이후, 상하이 미술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수허하우스로 모였다. 이제, 그다음 이야기는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1 CI KIM, Untitled, 2024, Acrylic and oil pastel on canvas, 116.8×91cm. 2, 3 지난 3월, 황푸강변 아르데코풍 건물 ‘수허하우스(SUHE HAUS)’로 이전한 아라리오 갤러리 상하이 전경.
‘부캐’ 이후의 세계
한때 유행한 ‘부캐’라는 말이 이제는 그 표현 자체로 올드하게 들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다중 정체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오늘의 기본값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자아로는 버티기 어려운 시대, 우리는 모두 일과 삶, 그리고 표현의 여러 얼굴을 가진 채 살아간다. 씨킴, 혹은 김창일이라는 인물은 그저 시대보다 조금 일찍 그 다중성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본캐는 예술가”라고 말한다. 사업가, 컬렉터, 갤러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은 모두 그 예술가성에서 파생된 가지, 혹은 공진화된 결과에 가깝다.
그의 컬렉팅 철학 또한 직관적이다. 작품을 살지 말지를 10분 안에 결정하고, 한 번 들인 작품은 되팔지 않는다. 수익을 위한 ‘컬렉션’이라기보다, 관계 맺기의 한 방식이다. 그의 태도는 예술과 닮아 있다. 재료와 부딪치며 우연을 받아들이는 방식, ‘소유’보다 ‘공존’을 우선시하는 감각. 그에게 비즈니스, 컬렉팅, 예술은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사고 체계 안에서 움직이는 세 갈래의 축이다.
새로움에 대하여
세계적인 미디어 이론가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책 <새로움에 대하여(On the New)>에서 “새로움은 시간적으로 새롭다기보다, 제도적으로 새롭게 인정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씨킴은 그 제도의 안쪽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다. 동시에 그 내부에서 제도의 바깥을 실험한다. 유통의 논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업가의 손으로, 그는 작업실에서 토마토즙과 철가루를 섞는다. 체계의 언어를 아는 사람이 ‘무용(無⽤)의 미학’을 고집한다는 사실, 그 긴장이 그의 예술을 박제된 성공담이 아닌,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으로 만든다.
다시, 한쪽 귀. 그는 한때 자화상에 귀를 그리지 않던 화가였다. 이제 한쪽 귀를 그린다. 완전한 단절이 아닌, 조금의 경청. 완전한 폐쇄가 아닌, 조금의 개방. 나는 이 ‘조금’을 그의 가장 큰 변화로 읽는다. 그 ‘조금’이 타자와 세계가 들어올 틈을 만든다. 그리고 그 틈이 앞으로의 2년, 5년, 10년을 바꿀 것이다.
나는 꿈꾼다. 안 될 이유가 있을까? I Have a Dream. Why not.
조혜정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초빙교수이자, 2026년 창원조각비엔날레 예술감독이며 상하이 국제공공예술연구소(IIPA) 특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뒤 중앙미술학원(CAFA)과 칭화대학교에서 미술사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15년간 전시 기획과 동시대 미술 비평 및 연구를 병행해왔으며, 이랜드 문화재단 자문위원, 국제갤러리 어소시에이트 디렉터 등을 역임하며 학계와 현장을 잇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writer CHO HYEJUNG(Art Columnist)
더네이버, 피플,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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