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도와줄게."
"뭘 어떻게? 대신 맞아주기라도 할거야?"
지난 7일 공개돼 전 세계 60개 국가에서 10위권에 진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에서 가정폭력을 당한 '희수'(이유미)와 그의 친구 '은수'(전소니)가 나눈 대화다.
최근 전세계에 공개된 OTT 오리지널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넷플릭스)와 '친애하는 X'(티빙) 등 화제작들이 '가정폭력'을 소재로 하고 있어 시선이 모아진다. 시리즈물로 제작 됐다고는 하나 결코,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벌어질법한 일들이기에 씁쓸함을 남긴다.
'당신이 죽였다'는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살인을 결심한 두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유미와 전소니, 그리고 1인 2역을 소화한 장승조와 '키다리 아저씨' 이무생까지 폭발적인 연기 열연이 극의 몰입도를 끌어 올렸다.
극 중 '은수'는 어린 시절 아빠가 엄마를 폭행할 때마다 남동생과 벽장 안에 숨었다. '자식'과 '가정'을 놓지 않으려는 모친의 간절함 때문에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된 '은수'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폭력'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목숨까지 잃는 상황까지 발생하자 더 이상 숨지 않는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나서게 된다.
'희수'는 가정폭력 피해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자신을 지켜줄 가족도 없었고, 법은 형식적인 창구일 뿐이었다.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결국 '살인'을 통한 자유를 꿈꾸게 된다.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 원인행위 통계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8월까지 발생한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 1966건 중 375건(19.07%)이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등 친밀관계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230건(61.3%)이 가정 폭력이었다.
특히 가정폭력 사건의 검거율은 2022년 19.9%에서 2025년 11.5%로 8.4%나 감소했다. 올해 8월까지 검거된 가정폭력사범 중 기소된 인원보다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인원이 더 많았다고 나타났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의 평화와 안정 회복을 목적으로, 가해한 사람에 대해 보호처분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가정보호사건 처리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처리된 가정보호사건 중 46.2%는 불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보호처분이 이뤄진 4398건 중 46.5%가 상담위탁 처분에 그쳤으며 접근제한, 감호위탁 등 피해자와 가해자 간 분리가 가능한 실효적 조치가 이뤄진 경우는 0.29%에 불과 했다. 죄를 짓고도 벌을 안 받는 경우가 대다수란 이야기다.
'당신이 죽였다'에서 노진영(이호정)은 형사지만 자신의 오빠가 가해자이기에 가정폭력을 묵인한다. '희수'에게 "집에서 해결하라" "경찰서에 가봐라. (가정폭력)이 죄 축에나 드는지"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시청자의 분노가 끓어오르는 지점이다. 이는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닐 지 몰라 더욱 그렇다.
한편 '친애하는 X'는 지옥에서 벗어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가면을 쓴 여자 백아진(김유정), 그리고 그녀에게 잔혹하게 짓밟힌 X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백아진'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 폭력과 폭언 등 학대를 견디고 버티며 살았다. 극 초반 바람난 아빠가 '알코올중독자' 엄마를 계단 아래로 밀어 버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엄마에게 매일같이 폭행을 당한 어린 '백아진'은 "119 좀 불러 달라"는 그의 호소를 당연한 듯 무시하고 지나간다. '친애하는 X'는 자막을 통해 '백아진'을 소시오패스라고 설명한다.
결국 '인격 장애'를 안고, 자신에게 방해되는 사람들을 무참히 짓밟는 '백아진'. 그에게도 비극의 씨앗은 '가정폭력'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맨홀'에서도 '가정폭력'을 담고 있다. 가정폭력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한 고등학생 '선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이야기다. '맨홀' 속으로 '폭력' 가해자인 아빠의 흔적을 던져 버리지만, 결국 그는 그 곳을 다시 찾는다. 당장 보이는 것은 사라질 지 몰라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정폭력을 '사랑 싸움'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가정 회복'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가 우선이다. '가정 폭력',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결코 허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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