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당신에게, 아티스트 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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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당신에게, 아티스트 김영은

더 네이버 2025-11-10 09:44:57 신고

청인들은 일상에서 무수한 소리를 듣는다. 눈을 감거나 입을 닫아 차단할 수 있는 다른 감각과 달리 청각은 부지불식간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감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듣기’는 사회와 환경의 변화를 무엇보다 예민하고 정직하게 인식하는 행위다.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5> 후원 작가로 선정된 김영은은 소리, 나아가 그것을 듣는 행위에 집중해온 아티스트다. 그는 ‘청취’가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작업을 통해 탐구한다. 


김영은 작가는 2011년 무렵부터 사운드에 집중한 작업을 이어왔다. 2016년 리움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 전시에서는 3개의 스피커로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구매한 곡을 번갈아 송출하는 사운드 비디오 설치 ‘1달러어치’를 선보였고, 2022년 송은미술대상 수상 전시 <소리의 틀>에서는 청취 행위의 역사적 맥락에 주목한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당시 전시작 중 일부를 <올해의 작가상 2025>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4개 전시실 중 김영은 작가의 전시실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스크린과 TV 화면에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가장 안쪽에서 상영되는 ‘듣는 손님’의 오디오가 흐르는 가운데, 그 외 작품은 헤드폰을 통해 관객이 개별 청취하는 형식이다. 그중 신작 3점은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소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I’는 1, 2편에 이어지는 연작으로, 20세기 초 왁스 실린더에 녹음된 아일랜드 남성 합창단의 노래를 미국 이민 역사에서 지워진 아일랜드 여성의 목소리로 복원함으로써 일종의 상상적 대안 역사를 제안하며 이들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상영 시간 38분의 영상 작품 ‘듣는 손님’은 디아스포라 공동체 구성원의 인터뷰로 구성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미국의 한인 이민 2세대, 한국의 고려인과 사할린 동포들이 이주 과정에서 겪은 소리에 얽힌 개인적 경험을 풀어놓는다. 누군가는 원어민의 영어와 이주민의 영어 가운데 한국 이민자의 억양을 선택한 결정을 말하고, 누군가는 모국어가 다른 부모 세대와 각기 한국어-러시아어로 소통한 대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소리민족지학’이라는 방법론에 집중하는 작가에게 전시작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김영은 작가는 소리 대신 글로 상세한 답변을 전해주었다. 

1 <올해의 작가상 2025> 김영은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 김영은, ‘듣는 손님’, 2025, 단채널 비디오, 4K, 컬러, 다채널 사운드, 38분. 작가 제공. ©김영은 3 김영은,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I’, 2025, 단채널 비디오, HD,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12분. 작가 제공. ©김영은 4 김영은, ‘Go Back To Your’, 2025, 단채널 비디오, 4K,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앰비소닉), 10분. 작가 제공. ©김영은

학부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이후 음악 및 필름과 디지털 미디어를 공부하며 사운드 기반 작업을 이어왔다. 어떻게 소리라는 매체에 이끌렸나? 어린 시절 악기를 배워 소리에 민감한 편이고,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DNA 테스트를 해보니 소리에 민감하다는 결과가 나오더라. 조소가 좋아서 조소과에 입학했지만 전통적인 재료로 조각 작업을 하며 ‘내가 이런 작업 방식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리라는 비물질적 매체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전 전시에서 축음기, 대형 스피커를 설치한 것과 달리 <올해의 작가상 2025> 전시는 ‘듣는 손님’을 제외하고 헤드폰을 통한 개인적 청취 환경을 조성했는데.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작업을 청취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했다. ‘듣는 손님’을 제외한 비디오 3부작은 처음부터 헤드폰 청취를 염두에 두고 3-D 녹음 방식으로 제작한 작업이다. ‘듣는 손님’이 5채널 사운드로 상영되니 다른 작업은 외부 소리를 차단하여 헤드폰 속 공간에 더 집중하도록 설계했다. 이때 노이즈 캔슬링 성능이 관건인데, 보스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다. 


‘붉은 소음의 방문(2018)’, ‘청음 훈련(2022)’,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2022)’ 등 구작을 함께 전시한다. 구작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시리즈 작업을 우선 선정했다. ‘붉은 소음의 방문’, ‘청음 훈련’과 신작 ‘Go Back To Your’는 일인칭 청각 경험을 구현한 비디오 시리즈로, 텍스트와 컬러, 소리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 속 주인공의 과거 청각 경험을 재현한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과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I’도 연작이다. 이 작품은 드물게 왁스 실린더로 남아 있는 20세기 초반 민족지학적 녹음물을, 현대의 오디오 기술을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녹음물에 숨겨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함의를 드러낸다. 


미국의 조선 유학생이 부른 노래를 다룬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이 문화의 ‘죽음’을 예견하며 비애를 자아냈다면, 미국의 아일랜드 이주 남성 합창단의 노래를 여성 목소리로 복원한 신작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I’는 음성의 주체를 변환함으로써 소실된 역사를 상상으로 복원한다. 일종의 대안 역사로도 보이는데, 1편과 달리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차이는 관점의 변화 때문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수많은 민족지학적 레코딩이 근대 식민주의 관점에서 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레코딩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희미하고 미약한 소리는 당대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 욕망, 절망 등 각양각색의 시대정신이 투사된 역사적 산물이니까. 


이주민이 일상에서 듣는 배제의 언어에 집중한 ‘Go Back To Your’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폭력적 언어가 ‘주문’으로 욕설이 ‘삐-’ 효과음으로 치환되는가 하면, ‘주문’과 ‘기침’의 작용 사이 순서가 뒤바뀌는 등 다층적 함의를 담은 시적인 영상이다. 사실적인 스크립트 작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여러 뉴스 기사와 에세이에서 참고한 타인의 경험, 지인들의 경험, 나의 경험이 모두 뒤섞여 있다. ‘붉은 소음의 방문’과 ‘청음 훈련’을 온전히 과거의 텍스트 기록을 참고해 제작한 것과 달리, 그 밖의 경험을 참고했다. 작품에서 일인칭 화자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기존 텍스트에서 발췌한 문장을 각색하거나, 나와 지인들이 직접 들은 말을 그대로 옮겼다. 이번 전시를 위해 완성한 작품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국 이외의 곳에서도 상영할 계획이다. 


‘듣는 손님’은 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필름 성격을 띤다. 이러한 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출연자들의 인터뷰가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지식과 간접적 청취 경험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대부분 인터뷰를 먼저 진행하고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을 추가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사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보기에는 전형적이지 않을 수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다큐멘터리의 기승전결보다 다른 점을 고려해 편집하기도 했고. 예를 들어 미술관은 언제든 관객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기에 언제 들어와 영상을 보아도 놓치는 느낌이 들지 않게 편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스토리라인이나 감정선의 고저에 집중하기보다 비슷한 무게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편집했다.


인터뷰이들은 어떻게 만났나? 대부분 리서치 중 연결된 기관과 사람의 소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났다. LA의 인터뷰이들은 현지 코디네이터의 친구다. 실제 촬영 기간은 3개월 정도였는데,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시점을 고려하면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듣는 손님’ 최종본에서 아쉽게 삭제한 푸티지가 있다면? 너무 많지만 한 가지만 소개하자면 시각장애인 학교의 골볼 선수인 다야나 부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한 촬영분은 다야나의 마지막 골볼 장면인데, 사실 다야나는 피아노를 더 좋아한다. 처음 다야나를 만났을 때는 피아노 치는 모습을 촬영할 생각이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며 방향이 바뀌었다. 피아노에 대해 말하는 동안 드러난 순수한 열정과 흥분된 표정은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서 빠지게 되었다. 추후 장편으로 확장할 때는 기존 촬영본에서 삭제된 부분을 다시 붙이고 새로운 인물들의 인터뷰도 추가할 예정이다. 


작품 속에서 노래방 기계로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반복해 등장한다. 작가의 노래방 애창곡은 무엇인가? 스티비 원더의 ‘오버조이드(Overjoyed)’다.


향후 과거뿐 아니라 ‘미래의 청각 환경’에 대한 작업을 예고했다. 어떤 작업이 될지 미리 귀띔한다면? 내년 가을 ACC 미래상 수상 전시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신작을 선보인다. 아시아 전역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시의 과거 낭송 소리를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러한 작업은 근대를 전후해 소거되거나 주변화된 과거의 소리를 다시 불러내 관객에게 청감각의 연대를 통한 미래를 그려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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