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공지능(AI) 골든타임’ 속에서 한국 주력 첨단산업이 자금 조달에 뒤처진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첨단 반도체 공장만 해도 하나를 지으려면 20조~30조원이 필요한데, 대기업마저 이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AI, 반도체 등처럼 큰 규모의 초기 민간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에 한해 금산분리 규제의 과감한 완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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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한다는 의미의 금산분리는 지난 1982년 은행법 개정을 통해 본격 도입됐다. 재벌 기업이 금융회사를 사금고처럼 활용해 계열사에 부당한 대출을 제공하거나 산업자본의 부실 위험이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최근 들어 엄격한 규제가 금융과 산업간 협업을 막고 경제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정부 여당에서도 첨단 전략산업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펀드운용주체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금산분리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지난해 AI 민간 투자액은 한국보다 80배가량 더 많다. 특히 구조조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텔은 자산운용사 아폴로와 51:49 합작투자를 통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는 등 공격 투자 계획을 밝혔다. 아폴로가 투자한 금액은 110억달러(약 16조원)에 달한다. 한국이었다면 경직적인 금산분리 규제로 현실화되기 어려운 사례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가 지난달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와 맺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두 배 많은 반도체 공장이 필요하다. AI 반도체 외에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등 많은 첨단산업 투자가 자금 규제 탓에 발이 묶여 있다는 게 산업계의 토로다.
재계에서는 단순 CVC(기업형 벤처캐피털) 규제 완화를 넘어 첨단산업에 한해서는 근본적인 금산분리 규제 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CVC 규제 완화는 규모가 작다”며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등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법 개정안 등을 통해 특정한 사람이 의결권을 행사하기 상당히 어려워지면서 (과거와 달리) 안전장치가 많아졌다”며 “소액주주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법으로 보완해놓았기 때문에 금산분리를 획일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더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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