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달 첫째 주(3일~7일)에 무려 7조 2,640억 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하며, 종전 기록인 2021년 8월의 7조 454억 원을 넘어섰다 . 단 5거래일 만에 역대 주간 순매도 기록을 갈아치운 이번 충격파는 단순한 조정이 아닌, 글로벌 리스크 심리가 한국 증시에 미친 구조적인 전이(Contagion) 현상으로 진단된다.
특히 지난 5일 코스피가 2.8% 넘게 급락하며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되는 ‘검은 수요일’을 겪은 것은, 시장의 공포 심리가 극단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기술적 신호였다.
그러나 사이드카 발동은 극심한 변동성을 의미하지만, 과거 사례를 볼 때 코스피는 단기 조정 후 평균 26.3일 이내에 회복되는 양상을 반복했다. 즉 이번 충격은 추세 전환이 아닌 과열을 해소하는 단기 조정의 신호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글로벌 폭풍의 근원: '빅쇼트'와 'AI 버블 논쟁'
마이클 버리 쇼크: 공매도 포지션 노출의 의미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특징은 매도의 동기가 2021년 당시의 펀더멘털 불안 요인 (환율 급등, D램 가격 하락 우려)이 아닌, 심리적 및 기술적 요인 (인공지능 AI 거품론, 단기 급등에 따른 고점 부담)에 기반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의 충격이 과거와 같은 펀더멘털 붕괴라기보다는, 급격한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기술적 차익 실현 또는 모멘텀 투자자의 리스크 회피성격이 강하며, 회복 탄력성이 더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국 뿐 아니라 이번 글로벌 매도세를 촉발한 핵심은 미국발 '인공지능(AI) 거품론'이었다. 특히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인 공매도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이끄는 사이언애셋매니지먼트가 3분기에 엔비디아와 팔란티어테크놀로지에 대해 대규모 풋옵션(하락 베팅) 포지션을 구축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AI 관련 주식의 고점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마이클 버리의 행동은 이미 고점 부담을 느끼던 시장 참여자들에게 강력한 '매도할 명분'을 제공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 역시 기술주 밸류에이션이 포화 상태라며 향후 2년 내 10~20% 시장 하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러한 월가 거물들의 경고와 버리의 상징적인 숏 포지션은 글로벌 리스크 회피를 촉진했고, 그 파장은 한국의 핵심 AI 밸류체인 종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그대로 전이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AI 랠리'는 '닷컴 버블'과 다르다: 구조적 차이 커
AI 거품론의 근거는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를 집행함에도, 아직 이에 비례하는 뚜렷한 수익 구조가 부재하다는 우려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현재의 AI 성장은 과거 닷컴 버블 시기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닷컴 버블 당시에는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무수익이었지만, 현재 AI 관련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AI 기술이 현장 업무에 실제 적용되면서 생산성 향상이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질 차이는 이번 조정이 구조적 붕괴가 아닌, 성장통에 가깝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도체 융단 폭격: SK하이닉스가 '프록시 종목' 의미
최근 코스피 전체 순매도액의 72%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두 종목에 쏠렸다. 특히 SK하이닉스는 3조 7,150억 원을 순매도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외국인 전체 순매도액의 51%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런 극단적인 집중 매도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를 '엔비디아·글로벌 AI 밸류체인의 가장 직접적이고 유동성이 높은 프록시(Proxy·대리 지표)'로 간주했음을 의미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모멘텀으로 주가 상승 폭이 가장 컸던 만큼, 글로벌 펀드 입장에서는 AI 밸류에이션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포트폴리오 내에서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준 '위너(Winner)' 종목을 우선적으로 팔아 차익을 실현하고 리스크를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반도체 업황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관론이라기보다, 모멘텀 기반의 기술적 차익 실현 동기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
외국인 매도세에도 불구하고 HBM 수요 성장세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며 , AI 인프라 구축이라는 실질적인 수요가 '펀더멘털의 하한선(Demand Floor)'을 제공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3E 12단 제품을 통해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인 '블랙웰 울트라(B300)' 탑재가 예상되며 , 삼성전자 역시 HBM 증설을 검토하고 내년 물량이 완판될 것으로 전망되는 등 , 핵심 공급 업체들의 실적 가시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이번 조정은 시장이 단기적으로 과열된 밸류에이션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봐야 하며, 견고한 수요 전망은 단기 조정 후 빠른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이다.
특히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를 거치며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고점인 12.8배에서 10.8배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러한 밸류에이션 정상화는 투자자들에게 주도주 비중을 확대할 수 있는 저가 매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경기·실적 사이클이 확장 국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정 국면은 단기에 그치고 궁극적으로 장기 우상향 추세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외국인 자금은 시장을 완전히 이탈하는 대신, 고변동성 주도주에서 방어적이고 구조적 성장이 기대되는 섹터로 이동하는 '전략적 섹터 로테이션'을 보이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 기간중 외국인의 순매수 상위 종목은 LG씨엔에스(1,940억 원), SK스퀘어(1,790억 원), LG이노텍(690억 원), 이수페타시스(490억 원), 하이브(480억 원) 순이었다 .
이는 다음 세 가지 테마로 해석됩니다.
첫째는 반도체 하드웨어(HW) 리스크가 부각되자,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던 AI 인프라 구축 및 IT 서비스 분야로 자금이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
둘째는 핵심 자회사(SK하이닉스)를 매도하면서도 지주사인 SK스퀘어를 순매수했다는 점은, 단순 수익보다는 자산 가치(NAV) 및 잠재적 배당 매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셋째는 이수페타시스(AI 기판/MLB)를 매수했다는 것은 AI 밸류체인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덜 올랐으나 펀더멘털이 강력한 핵심 소부장 기업으로 투자를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LG이노텍 매수세는 전장(자동차 부품) 및 XR(확장현실) 등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다각화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다 .
외국인 주간 순매도/순매수 집중도 분석 (3일~7일)
| 구분 | 종목 (코드) | 금액 (조 원/억 원) | 외국인 매매 해석 및 테마 |
| 순매도 1위 | SK하이닉스 (000660) | 3.715 조 원 | AI 밸류체인 고점 부담, 기술적 차익 실현 집중 |
| 순매도 2위 | 삼성전자 (005930) | 1.503 조 원 | 대형주 전반 Risk-off, 시장 충격파 반영 |
| 순매수 1위 | LG씨엔에스 (064400) | 1,940 억 원 | AI 인프라/IT 서비스 섹터로의 방어적 로테이션 |
| 순매수 2위 | SK스퀘어 (402340) | 1,790 억 원 | 지주사/자산 가치(NAV) 매력, 배당 기대감 |
리스크 관리: 현금 비중의 유연한 조절
뻔한 이야기이지만 극심한 변동성 장세에서는 무엇보다 자산 방어가 중요하다. 개인 투자자는 시장에 대한 불안감과 보유 종목에 대한 확신도를 고려하여 현금 비중을 10%에서 50% 사이로 유연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특히 시장 불안도가 높다면 현금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보하여, 예상치 못한 추가 하락에 대비하거나 향후 저가 매수 기회를 잡을 '총알'을 마련해야 한다.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