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플러스] 1930년대 경성을 걷다...뮤지컬 ‘팬레터’의 감각과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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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플러스] 1930년대 경성을 걷다...뮤지컬 ‘팬레터’의 감각과 서정

뉴스컬처 2025-11-09 05:55:23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2016년, 조용히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한 편이 있었다. 대형 상업 공연의 홍수 속에서 '팬레터'는 외적으로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문학성과 시대의 정서를 품은 서정이 있었다. 작품은 이후 10년간 꾸준히 재공연을 거듭하며, 한국 창작뮤지컬이 도달할 수 있는 한 형태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25년, ‘팬레터’는 10주년을 맞이한다. 

‘팬레터’의 서사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도 글을 쓰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문학은 예술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었다. 작품은 실존 문인 김유정과 이상, 그리고 구인회의 전설을 모티프로 삼지만, 실명을 버리고 새로운 허구를 창조한다. 김해진, 정세훈, 히카루. 세 인물은 각각 창작의 고독, 동경의 그림자, 예술의 환영을 상징한다.

뮤지컬 '팬레터' 21년 공연. 사진=라이브
뮤지컬 '팬레터' 21년 공연. 사진=라이브

김해진은 글을 통해 현실을 견디는 예술가의 초상이다. 글은 세상을 향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로 향한다. 정세훈은 김해진를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으로, 문학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려 하지만 끝내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히카루는 그 둘 사이를 흐르는 그림자 같은 인물로 실재이자 허상이며, 예술 그 자체의 은유로 읽힌다.

이러한 삼각의 구도는 관계의 긴장을 넘어, 예술가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윤리적·존재론적 충돌을 드러낸다. 예술은 누군가에게 헌정된 사랑인가, 아니면 철저히 자기 안으로 수렴되는 고백인가. ‘팬레터’는 그 질문을 서간 형식으로 풀어낸다. 편지는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구조이자 상징이다.

편지는 언제나 ‘부재한 자’를 향한다.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게 쓰는 글,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를 고백. ‘팬레터’의 편지는 바로 그 결핍의 미학 위에 세워져 있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기보다, 오히려 단절의 증거에 가깝다. 그러나 그 단절 속에서야 비로소 예술은 발생한다. 말할 수 없기에 쓰고, 닿을 수 없기에 노래한다.

감정의 폭발 대신 감정의 여백도 강렬하다. 대부분의 뮤지컬이 클라이맥스의 격정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반면, ‘팬레터’는 오히려 정적의 리듬을 따른다. 인물들은 감정을 숨기지 않지만, 그것을 노래로 밀어 올리는 대신 문장 속에 녹인다. 절제의 미학은 문학이 지닌 서정성과 맞닿는다.

음악은 작품의 정서를 미묘하게 이어준다. ‘팬레터’의 넘버들은 각각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머무는 시간을 들려준다. 피아노의 잔잔한 흐름, 현악기의 울림, 리듬의 여백은 인물의 내면을 따라 흐르며 관객에게 조용한 긴장을 남긴다. 멜로디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단단한 정직함이 서사의 중심을 붙든다.

무대는 음악과 함께 하나의 심리적 공간이 된다. 공간의 전환은 인물의 감정선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고, 빛과 그림자는 시대의 억압과 인물의 내면을 동시에 시각화한다. 무대장치가 최소화된 대신, 연출은 ‘시선의 방향’에 집중한다. 배우가 바라보는 한 점, 시선의 궤적이 곧 무대의 움직임을 결정한다.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뮤지컬 '팬레터' 포스터.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매 시즌 서로 다른 배우들이 김해진, 정세훈, 히카루를 자신만의 결로 해석한다. 에녹의 김해진은 내면의 고요 속에서 타인을 거부하는 예술가로, 김경수의 해진은 연민과 불안을 동시에 품은 인간으로 변주된다. 정세훈 역의 문성일과 윤소호는 청춘의 동경과 절망을 교차시키며, 히카루 역의 김히어라와 소정화는 그 둘의 경계를 흐리는 존재로 무대를 지배한다.

작품의 또 다른 미학적 성취는 보편성에 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팬레터’가 던지는 질문은 보편적이다. 사랑과 존경, 예술과 욕망,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열망. 이러한 감정은 어느 시대의 예술가에게나 공통된 언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특정 시대극이 아니라, ‘예술가의 정신사’로 읽힌다.

해외 공연의 성공은 이러한 보편성의 결과다. 2018년 대만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2022년부터 이어진 중국 라이선스 공연, 그리고 2024년 일본 초연은 감정의 공명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일본 공연이 ‘오다시마 유시 번역희곡상’을 수상하고, 2025년 중국뮤지컬협회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휩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어가 달라도, 인간의 외로움과 예술의 열망은 같은 언어로 번역된다.

‘팬레터’는 K-뮤지컬의 성장사 속에서 예외적 존재로 남는다. 그것은 거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장치 대신, 감정의 미세한 결을 세공하듯 다듬는 방식을 선택했다. 서사보다 감정, 드라마보다 언어, 무대보다 인물의 눈빛이 중심이 되는 작품. 그것이 ‘팬레터’가 지난 10년간 관객에게 남긴 인상이다.

2024년 중국공연 모습. 사진=상해문화광장
2024년 중국공연 모습. 사진=상해문화광장

작품은 ‘관객의 위치’ 돌아보게 만든다. 관객은 편지의 수신자이자 발신자이다. 우리는 무대 위의 인물들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그들의 편지 속에 잠든 감정을 읽는다. 그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10주년을 맞은 지금, ‘팬레터’는 한국 창작뮤지컬이 쌓아온 정신적 계보의 총합이다. 상업적 성공보다 ‘예술로서의 공연’이 얼마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를 스스로 증명해왔다.

예술은 언제나 시간의 언어로 쓰인다. ‘팬레터’는 1930년대의 언어를 빌려 2020년대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다시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번역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얽힌 서정적 연극, ‘팬레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다시 읽히고, 내면 속에서 다른 어휘로 쓰이고 있다. 그리하여 작품은 단 한 번의 공연이 아니라, 계속 쓰이는 하나의 편지처럼 남는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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