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인 2.5세의 삶 녹인 작품…"아버지의 말 대사로 옮기기도"
14년만 한국서 공연…내가 쓴 작품 멀리 퍼져 기뻐"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지금은 한일 관계가 달라지며 일본인도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한국인도 일본에 흥미를 가지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지만 재일한국인의 존재감이나 그들이 가진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4년 만에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을 국내에 선보이는 재일교포 2.5세 정의신 연출은 6일 이 작품이 재일한국인을 향한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연출은 이날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일한국인만의 역사나 감춰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라며 "한국을 내 나라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본에서 자랐기에 생기게 되는 복잡한 마음도 작품에 녹아있다"고 밝혔다.
그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야끼니꾸 드래곤'은 1970년대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곱창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재일한국인 용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은 2008년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과 일본 신국립극장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초연했다. 2011년 재연에 이어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르게 됐다.
정 연출은 "14년 만에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내가 쓴 작품이 상상을 뛰어넘어 멀리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야끼니꾸 드래곤'에는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작품 곳곳에는 정 연출의 삶과 1970년대의 시대적 경험이 곳곳에 녹아있다. 일례로 주인공 용길의 대사 가운데서는 정 연출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정 연출은 "'한국에 가려고 짐도 다 쌌는데, 동생이 감기에 걸려 배를 못 탔다'라는 대사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며 "용길 역할은 제 아버지의 말을 대사로 옮긴 것이 많아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작품의 또 다른 재미 요소는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시작되는 프리쇼다. 프리쇼에서는 배우와 악사들이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흥겨운 연주를 들려주고, 고기를 굽는 냄새를 풍기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정 연출은 이러한 장면을 넣는 이유가 연극을 '제사'로 여기는 본인의 연출관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렸을 적 제사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가 아침부터 정성껏 만든 요리를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모습"이라며 "저 역시도 정성껏 준비한 장면과 음악을 관객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프리쇼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정 연출은 또한 이 작품이 이주민들이 겪는 차별 문제를 조명하고 함께 해답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어로 답변하던 정 연출은 이주민 차별의 해결책에 관한 질문을 받자 "어려워요"라는 짧은 한국어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편인데,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문제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며 "정리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효고현 출신인 정 연출은 1983년 극단 구로텐트를 거쳐 1987년 극단 신주쿠양산박의 창립멤버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앞서 '야끼니꾸 드래곤' 초연 당시 일본 요미우리연극대상과 한국연극협회 선정 '올해의 우수공연 베스트 7'을 받기도 했다.
그는 현재 연극과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2018년에는 '야끼니꾸 드래곤'을 영화로 제작해 선보이는가 하면, 2023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연극으로 각색해 선보이기도 했다.
내년 한국에서 새로운 연극 작품도 계획하고 있다는 정 연출은 앞으로도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인생의 순간들을 무대 위로 올리고 싶다고 밝혔다.
"인생에는 희극과 비극이라는 두 개의 레일이 펼쳐져 있고, 그것이 끊임없이 뒤집히며 가는 것이 곧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을 연극을 통해 녹여내려 하고 있습니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14일∼2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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