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PACE
서울에서 부산까지 새로 생긴 문화 공간을 둘러봤다.
성수나무
성수동에는 공장이 참 많았다. 지금도 현대식 건물 사이로 여전히 제 몫을 하는 공장이 남아 있고, 새로운 할 일을 찾은 터가 넘쳐난다. 성수나무는 1960년대부터 가죽 공장 기숙사로 쓰이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아트 스페이스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다세대 주택 사이에서 주변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90살 먹은 가죽나무를 중심으로 ‘ㅁ’자 형태의 공간이 둘러싸고 있다. 한 칸은 뮤지션이 입주해 레지던시로 사용하고 있고 한 칸은 전시실,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정비한 방에서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 2층 역시 오래된 주택의 모습이 남아 있다. 아궁이로 밥을 짓던 부엌과 쪽방이 개별 전시 공간으로 기능하고 서까래와 창호지 문이 이곳만의 장식이 된다. 2층에서 내려다보면 가죽나무가 흩뿌린 잎사귀, 사람의 무릎으로 닳은 평상, 무심하게 놓인 낚시 의자가 평화롭기만 하다. 이 부드러운 풍경 뒤로 10년 후 재개발로 인한 철거가 예정되어 있다. 성수나무는 유예 기간 동안 지난 흔적에 새로운 흔적을 덧씌우며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려 한다. 그런 의지를 보여주듯 첫 시작을 필름 촬영과 디지털 스캐닝을 반복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기록과 누락, 흔적을 시각화하는 작가 박인성의 개인전으로 열었다. 이어 11월 15일부터 전통적인 재료를 새로운 감각으로 선보이는 젊은 작가 3인의 합동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서울시 성동구 성덕정3가길 3-14
모마 북스토어
뉴욕현대미술관(MoMA, 이하 모마)과 현대카드의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마의 온라인 디자인 스토어로 시작된 협업이 비로소 북스토어라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결실을 맺었다. 압구정동에 문을 연 모마 북스토어는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모마 전문 서점이다. 모마가 직접 출판한 전시 도록을 비롯해 아트·디자인·건축 관련 약 200종 1천100여 권의 도서와 디자인 상품을 선보인다. 미국과 일본 전역 등 많은 곳에 디자인 스토어가 있지만 서점은 처음이다. 왜일까? “‘미술관의 정체성은 도록인데 왜 북스토어가 없을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공간을 만드는 이들 모두 서점을 사랑하며 필요성을 알고 있었고요. 고민 없이 북스토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모마 북스토어 관계자의 말처럼 자연스러운 사고와 판단으로 처음이라는 모험은 일사천리로 완성되었다. 서점과 열람실 사이를 연상시키는 내부는 모마의 큐레이터가 직접 책의 배치를 일일이 도왔다. 중간 중간 놓인 의자도 현지에서 쓰이는 것과 같다. 중점은 여기에 있다. 주택가 1층에 자리한 격식을 차리지 않은 산뜻한 분위기, 집중해서 돌아볼 수 있는 적절한 크기. 구입만을 위한 방문이 아닌 현대미술의 흐름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지금 왜 북스토어이어야만 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된다.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18-10
프리즈 하우스
프리즈 하우스 서울은 프리즈 서울 4회를 맞아 문을 연, 영국 외 지역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프리즈의 공간이다. “런던 메이페어의 No.9 코크 스트리트가 연중 상시로 전시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지 갤러리 신의 중요한 중심지로 자리 잡은 것처럼 프리즈 하우스 서울 역시 서울에서 동시대 미술의 에너지를 이어갈 수 있는 거점으로 마련되었어요. 단순히 아트페어 주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창작자와 기관, 그리고 관람객이 장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프리즈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죠.” PR 담당자의 말처럼 확실한 목적을 지닌 프리즈 하우스는 코엑스와 삼청·한남·청담 등 주요 문화 거점과도 가까운 약수동에 위치한다. 1988년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을 서울의 주요 예술 공간을 다수 완성해온 아워레이보(Our Labour)가 시공해 건물 본래 개성을 살리면서도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역동성을 담아낼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정원에는 세계적인 건축 그룹 SANAA의 작품이 공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상징적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총 4개 층으로 중앙 계단과 채광창을 중심으로 다양한 성격의 전시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퀴어 아티스트들의 시선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을 재해석한 개관전 «언하우스(UnHouse)»를 마친 프리즈 하우스는 객원 큐레이터를 통한 새 전시를 기획하고 있고 토크, 북 론칭, 퍼포먼스, 협업 프로젝트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문화 행사를 준비 중이다. 서울시 중구 동호로15길 17
부산복합문화공간 새모
부산 영도에 커다란 문화공간이 하나 들어섰다. 영도이긴 영도인가 싶다. 초가을의 높은 하늘에 해무가 눈에 잡힐 듯 떠다닌다. 인공 수로인 동삼해수천을 끼고 자리한 공간은 주변만 돌아봐도 눈이 즐겁다. 주변 주택가와 해양산업을 위한 기관 사이에서 문화적 가교를 위해 세워진 새모는 ‘새롭게, 모두가 모이는 공간’이라는 의미처럼 모든 나이대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을 지향한다. A동부터 D동까지 총 네 개 건물에 전시, 공연과 강좌를 위한 시설, 도서관, 어린이를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11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가장 먼저 전시 공간이 문을 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어딘가 생소함이 느껴진다. 지형의 단차를 그대로 살려 정면으로 펼쳐진 전시장 중간에 배리어프리를 위한 경사로가 자리한다. 다른 전시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념의 장치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천장에 조금씩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자연스러운 조명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게 누구더라도 보는 이들을 빛나는 순간으로 데려가주는 세계적인 사진가 조던 매터의 전시로 문을 연 새모는 영도의 모습을 담은 두 번째 전시 «Non-camera Research: 영도의 색»을 11월 28일까지 선보인다. 부산시 영도구 해양로301번길 14
호반아트리움
호반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호반아트리움은 2018년 경기도 광명에 문을 열어 2022년까지 운영하다 올해 자리를 옮겨 과천에서 재개관했다. 로마 건축에서 유래된 중앙 정원을 의미하는 건축 용어인 ‘아트리움’, 직선의 단정함과 견고함이 묻어나는 건물이 건설업에서 시작된 공간임을 자연스럽게 피력한다. 지상 2층과 3층에 마련된 두 개의 전시관 또한 정직하다. 시원하게 열린 네모반듯한 공간에 흰 벽, 오래된 건물 바닥에서 흔히 보던 ‘도끼다시’ 연마가 주는 특별한 감성 한 스푼. 전시마다 조금씩 변주를 주며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호반문화재단은 국내 중견·원로 작가를 지원하는 ‘호반미술상’과 청년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H-EAA (HOBAN-Emerging Artist Awards)’를 지속하고 있는 만큼 전시의 내실에도 진심을 쏟는다. 첫 번째 전시인 소장품전 «단초의 구(球, Circular Basis)»를 통해 이우환, 이강소, 김창열, 마르크 샤갈, 아니쉬 카푸어, 야요이 쿠사마 등의 화려한 라인업을 선보였다. 현재 열리고 있는 «고요한 빛, 황홀의 틈»은 몇 년 전부터 눈여겨보던 신예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시치올드르의 국내 첫 전시이다. 호반아트리움이 발굴한 작가의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열린다. 경기 과천시 사기막길 71-7
마이어리거울프(Meyer Riegger Wolff)
국내외 갤러리들의 새로운 집약체가 된 한남동에 눈에 띄는 건물 하나가 더 들어섰다. 흰색 외벽에 주황색 포인트가 조화를 이루는 외관과 중첩된 1~2층의 노출 콘크리트 내부를 지닌 마이어리거울프 갤러리. 원오원 아키텍츠의 최욱 건축가가 만든 공간이라는 화제성과 더불어 유럽의 탄탄한 두 갤러리가 뜻을 합친 결과물이라 개관 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1997년 독일 카를스루에에 설립해 현재 베를린과 바젤에서 운영 중인 마이어리거(Meyer Riegger)와 지난 20년간 파리에 기반을 둔 갤러리 조슬린 울프(Galerie Jocelyn Wolff)는 최근 몇 년간 아시아 미술시장과 긴밀한 교류를 이어왔다. 한국 아트 신의 가능성을 점치던 중 2022년 프리즈 서울을 통해 첫 공동 부스를 열었고 합동 전시와 임시 전시 공간을 거쳐 현재의 연합 갤러리 프로젝트에 이르렀다. 9월 2일에 시작되어 11월 7일까지 열리는 개관전 ≪지난밤 꾼 꿈(Heute Nacht Getraumt / Dreamed Last Night)≫은 18세기 살롱 문화의 형식을 빌려왔다. 독일과 프랑스 두 갤러리가 소장해온 시간과 명성을 초월한 작가들의 작품을 관객들의 물리적인 눈높이를 따라 촘촘하게 배열한 방식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18세기에 살았던 익명의 작가가 그린 천체 드로잉과 스위스의 대표적인 작가 미리암 칸의 주요 작품을 나란히 놓는 식이다. 마이어리거울프에 가면 미술사의 고유한 전통을 현대미술과 엮은 새로운 흐름이 보인다.
서울시 용산구 독서당로29길 6 1층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공간은 신기하다. 끊임없이 생기는데 지루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새로운 공간을 방문할 때마다 가챠를 뽑듯 설렌다.
Copyright ⓒ 바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