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가 잠 못 이루던 선거의 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자칭 민주사회주의자이자 불과 4년 경력의 뉴욕주 하원의원 조란 맘다니(34)가 3선 주지사를 지낸 정치 거물 앤드루 쿠오모를 9%p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누르고 뉴욕 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우간다에서 태어나 뉴욕에 귀화한 이 젊은 이민자는 뉴욕시 역사상 최초의 무슬림 시장이자, 1세기 만에 가장 젊은 시장 당선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단순한 기록 경신이 아니었다. 이는 월스트리트의 기득권과 도널드 트럼프(79) 대통령의 문화 전쟁적 공격에 맞선 뉴욕 시민들의 '풀뿌리 혁명'의 상징이었다.
조란 맘다니는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승리 연설에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보고 계신 것을 알기에 네 마디를 전하겠습니다. 볼륨을 높이세요!(Turn the volume up!)”.
이 네 마디는 뉴욕 시청의 새로운 시대와 워싱턴 D.C.와의 전면적인 대결을 예고하는 선전포고였다.
맘다니 vs 쿠오모 대결 선거전
억만장자vs 풀뿌리들과 싸움
맘다니의 개인사는 그의 급진적인 정책 비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간다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졸업후 귀화한 미국시민이다. 브롱스 과학 고등학교와 보든 칼리지를 졸업한 후, 그는 저소득층 주택 소유자들이 퇴거당하는 것을 막는 '주택 압류 방지 상담사'로 일했다. 이 경험은 그의 정치 철학을 형성하는 핵심이 되었고, 뉴욕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그의 접근법을 단순한 이념이 아닌, 현실적인 '계급 문제'로 정의하게 만들었다.
그의 선거공약 목록은 그의 정책적 방향을 잘 보여준다.
^임대료 동결: 임대 안정화 주택에 대한 임대료를 완전히 동결.
^보편적 서비스: 시내 버스 요금 영구 무료화 및 6주부터 5세까지 보편적 무상 보육 제공.
^공공의 힘: 폭등하는 물가에 맞서기 위한 시 소유 식료품점 설립 및 10년간 20만 호의 공공 주택 건설 목표.
^재원 조달: 억만장자 계층을 향한 직접적인 경고로, 100만 달러 이상 소득자와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을 공약했다.
그는 "억만장자들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며 , 이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 시의 방대한 재원(1,160억 달러 규모)과 행정력을 활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맘다니의 승리는 돈의 힘을 조직의 힘으로 이긴 놀라운 사례로 기록된다.
그의 상대였던 쿠오모 전 주지사 진영에는 억만장자들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은 쿠오모 지지 정치활동위원회인 슈퍼팩(PAC)에 무려 830만 달러(약 120억원)를 기부했으며,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애크먼도 175만 달러(약 25억2000만원)를 후원했다. 억만장자 계층이 특정 선거 결과를 막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고도로 가시적인 대리전이었다.
하지만 맘다니는 민주사회주의 미국(DSA)의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풀뿌리 조직력을 통해 맞섰다. 그의 캠페인은 수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하여 "수백만 개의 문을 두드렸으며" 유권자들과 직접적인 유대감을 형성했다. 쿠오모 캠페인이 2,500만 달러(약 360억원)의 거대 자금에도 불구하고 "단절된" 느낌을 주었던 반면 , 맘다니는 진정성 있는 관계망으로 이 거대 자금력을 무력화시켰다.
트럼프와 공화당 열성 지지자들은
'공산주의자 미치광이'로 낙인찍기
맘다니의 당선이 현실화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진영은 즉각적인 격분으로 반응했다. 트럼프는 맘다니를 "공산주의자 미치광이(Communist lunatic)"이자 "발생을 기다리는 재앙(disaster waiting to happen)"이라고 비난하며, 그의 당선은 뉴욕을 "경제적, 사회적 재앙"으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거 막판에는 트럼프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맘다니를 "유대인 혐오자(Jew hater)"로 몰아세우며 인종적, 종교적 갈등을 부추기려 했다. 이는 맘다니의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과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이용한 노골적인 문화 전쟁 전술이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CNN 출구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격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맘다니가 유대인 유권자의 약 3분의 1을 얻었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 그의 '어포더빌리티' 중심 메시지가 정체성 정치를 넘어섰음을 시사했다. 어포더빌리티란 일상과 경제에서 '가격 대비 부담 가능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며, 정책이나 시장 분석 등에서 중요한 지표다. 한마디로 경제적 감당 가능성을 말한다. 예컨대 주택 어포더빌리티란 사람이나 가구가 자신의 소득으로 집을 구매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그래서 맘다니는 선거 공약으로 임대료 완전 동결을 내걸었던 것이다.
맘다니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트럼프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는 자신의 이민자 정체성을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의 도구로 사용했다.
“뉴욕은 이민자들의 도시로 남을 것입니다.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되고, 이민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오늘밤을 기해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그는 연방 정부가 뉴욕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맹세하며, “그러니 트럼프 대통령, 이 말을 들으십시오. 우리 중 누구에게라도 오려면, 우리 모두를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라고 선언했다. 또한 맘다니는 뉴욕의 부패와 불평등 문제를 트럼프와 같은 "억만장자"와 연결하며, 시장으로서 "억만장자들이 탈세하고 세금 혜택을 악용하는 것을 허용한 부패의 문화를 끝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맘다니는 뉴욕시를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저항의 요새"로 규정했으며, “도널드 트럼프에게 배신당한 국가에 그를 물리치는 방법을 보여줄 수 있는 도시가 있다면, 바로 그를 낳은 이 도시입니다.” 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선전포고는 즉각적인 행정적 충돌을 예고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맘다니 당선 시 뉴욕시에 대한 연방 자금 지원 중단과 이민세관집행국(ICE)의 단속 강화를 위협했다. 트럼프는 심지어 도시를 "청소하기 위해" 주 방위군을 파견할 수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맘다니는 이에 맞서 시 차원에서 ICE나 연방 집행 기관에 개인 데이터 공유를 금지하는 등 이민자 보호를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으며 , 뉴욕주지사 및 주 법무장관과 연합하여 연방 정부의 개입에 법적으로 맞설 계획임을 밝혔다.
맘다니의 승리는 전국적인 좌파 운동에 강력한 승리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진보 인사들은 그의 승리가 당 주류의 지원 없이도 풀뿌리 조직화만으로 이길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맘다니 앞에는 난관이 놓여 있다.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들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통국(MTA)의 재정적 반대 , 주 의회(Albany)의 협조 필요성 , 그리고 연방 정부와의 끊임없는 갈등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에 직면해 있다.
이 젊은 시장이 '시위'의 에너지를 '통치'의 현실로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의 당선은 일시적인 파란으로 끝날지, 아니면 미국 정치사에서 새로운 계급 기반 정치 시대의 서막으로 기록될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뉴욕 시민들은 지금, 그들의 새로운 지도자가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의 가장 강력한 권력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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