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의 마지막 평가는 명확하다. 확장 재정과 성장동력 둔화다. 4일 국회예산정책처 종합 분석을 보면 정부는 민생안정과 성장동력 확보를 동시에 내세웠지만, 실제 편성은 확장·상징·단절의 세 가지 단어로 요약된다. 확장은 총지출·의무지출에서, 상징은 성인지·탄소·AI 같은 ‘정치적 표식 예산’에서, 단절은 부처 간·연도 간 계획의 연속성이 끊긴 곳곳에서 드러난다.
먼저 거시 전제부터 허물어진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시한 실질성장률은 2025년 1%, 2026년 1.9%에 그친다. 경기 회복 국면을 전제한 ‘세입기반 확충’은 낙관에 가깝다게 예산정책처의 분석이다. 재정총량 지표(FD, FIS, FI)로 보더라도 2026~2029년 기조는 확장성 유지가 유력하다. 10조원대 감세의 후속 조정도 미흡해 세입·세출의 괴리가 넓다.
국가채무는 2026년 1415조2000억원(GDP 대비 51.6%), 중기운용계획대로면 2029년 1788조9000억원(58%)까지 오른다. 특히 국민 부담으로 직결되는 ‘적자성 채무’ 비중이 71%에서 76.2% 5.2%포인트 뛴다. 이자지출은 2025년 29조8000억원에서 2029년 41조6000억원으로 연평균 9.1% 증가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의무지출 가운데 가장 가파른 증가다. 복지·연금·지방 이전과 겹치면 재정의 경직성은 더 커진다.
재원배분을 보면 ‘정책 우선순위’와 ‘투입 구조’의 균열이 분명하다. 12대 분야 중 보건·복지·고용은 269조1000억원(+20조4000억원, +8.2%)으로 증가폭이 가장 컸다. 필요한 영역이지만, 제도 개편 없는 현금성 확대가 여전히 주류다. R&D는 35조3000억원(+5조7000억원, +19.3%)으로 증가율이 가장 높다. 다만, 과제 쪼개기·부처 중복·평가 미흡이 문제로 지속 제기되고 있다. 외교·통일은 7조원(–7000억원, –9.1%)으로 축소돼 대외 리스크 대응 여력이 오히려 줄었다.
온실가스 감축예산은 16조8000억원(+4조7000억원, +39.4%)으로 키웠지만, 정작 정량 감축 실적을 확인 가능한 사업은 12조원(71%)에 그친다. 나머지는 R&D·홍보·행사성 사업으로 분류됐다. 감축실적 중심의 예산 체계가 없으면 탄소예산은 ‘그린 전시’로 흐른다.
성인지·복지·생활 밀착형 예산은 앞선 기사에서 지적했듯 성과지표 부재·집행가능성 낮음·회수율 취약이 공통 병목이다. 성인지 26조8000억원 양육비 선지급 324억(실집행률 17%), 아동수당 등 정치적 상징은 늘었지만 관리 시스템은 그대로다.
국가채무의 질적 변화도 놓치면 안 된다. 재정건전성 표에서 보듯 2021년 이후 선진국은 GDP 대비 부채 비율을 낮췄지만, 한국은 2020년 45.9%→2025년 53.4%로 상승세를 이어간다. 게다가 금융성 채무에서 적자성 채무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자지출이 의무지출을 앞으로 끌어올리면, ‘미래 투자’의 예산 공간은 더 좁아진다.
이재명 정부는 민생 안정·성장동력 확보를 예산의 양대 축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는 민생은 현금, 성장동력은 구호에 머문다. 처방은 △성과 중심 예산으로의 전면 전환(정량 목표·연동 환류 없으면 삭감) △재정의 질 개선(중기 재정준칙을 실지표로 복원) △AI·R&D 통합 기획(국가전략위원회-기재부 공동 사전심사로 중복을 원천 차단) △온실가스 감축의 ‘실적 회계’ 도입 △생활 예산의 집행·회수 고리 강화(집행률·회수율 공개 의무) 등이 있다.
예산은 숫자가 아니라 국가의 우선순위다. 지금의 예산은 좋은 말은 많고, 증거는 적다. 내년은 재정이 성장의 발목을 잡느냐, 성과가 재정을 설득하느냐의 갈림길이다. 확장과 상징을 줄이고, 연속성과 실적을 남기라. 그것이 ‘혈세’가 증발하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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