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다. 거짓말이면 거짓말이지 하얀 거짓말은 또 뭔가? 보통 이 말은 상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배려하거나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하는 선의의 거짓말로 인식된다. 이런 이유로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흔히 사용되며 때로는 상황을 부드럽게 넘기기 위한 처세술로 곧잘 활용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하얀 거짓말이든, 검은 거짓말이든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미국의 한 심리학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이를 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약 7분당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정말 인간은 거짓말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렇게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
전문가들은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이야기한다. 처벌이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또는 사회적 관계 유지와 호감을 얻기 위해... 자존감 부족과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거짓말 자체가 주는 쾌감이나 중독성, 리플리 증후군 같은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꼽은 거짓말의 이유들은 다양해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공통된 이유로 귀결한다. 바로 ‘진실의 회피’이다.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두렵거나 싫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진실은 고통을 수반한다.)
현대 미국 흑인 문학을 대표하는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인 키에스 레이먼은 자신의 책 『헤비』에서 이렇게 적었다.
“당신에게 이 글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쓰고 싶었습니다.” _(19쪽)
레이먼은 미시시피강이 흐르는 미국 남부 잭슨이라는 도시의 흑인 빈민가에 사는 9세의 흑인 소년이었다. 잘 생기지 않은 얼굴로 12세에 이미 100kg에 가까운 몸무게를 지녔고 학교 성적도 최하위를 맴돌았다. 주위의 불량한 흑인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잠이 들기 전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열두 살짜리가 98.8킬로그램이면 너무 뚱뚱한 거냐고. (_108쪽)
이런 이유들로 교사인 엄마에게 허리에 차는 벨트로 학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농구부에서는 뚱뚱한 느림보라고 늘 놀림을 받았다. 할머니를 제외한 주위 사람들, 특히 그에게 가해지는 백인들의 혐오와 차별은 그의 자존감에 항상 생채기를 냈다.
당신은 내 옷을 모두 벗기고, 우리가 함께 자던 침대에 엎드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소리질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내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얼굴을 침대에 파묻게 했습니다. 매맞는 건 물론 아팠지만, 아홉 살짜리의 벌거벗은 뚱뚱하고 검은 몸을 보면서도 그토록 세게 나를 때릴 수 있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훨씬 더 아팠습니다. (_86쪽)
이런 환경 속에서도 대학교수로 우뚝 선 그가 어머니에게 쓴 에세이 『헤비』에서 말했듯, 그는 거짓말을 쓰고 싶었다. 자신이 지나왔던 억압받는 몸과 지워지지 않는 기억, 방황과 부조화, 차별과 혐오, 위태로운 사랑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는 그 고통스러운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백과 수치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우뚝 섰다. 왜 일까?
그것은 그가 몸과 가난과 폭력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개인적, 구조적, 사회적 불합리를 진심으로 바꾸고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헤비』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을 고쳐나가려면 자기 자신을 직시할 용기와 정서적 무게를 감당할 힘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비전은 물론, 가족과 일, 사회, 국가에 대한 비전까지도 새롭게 구성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무거움뿐입니다. _「한국어판 서문」
물론 여기에서의 ‘무거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거움이고 그럼에도 우리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감당해야 할 무거움이다.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직시하고 그 연약함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정직하게 이야기할 때, 그리고 그 무게를 딛고 일어서는 순간, 비로소 진짜 나의 삶이 시작된다. 『헤비』의 레이먼은 그 진실을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승리의 그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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