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죽어 나가는 노동자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그때나 지금이나 죽어 나가는 노동자들

디컬쳐 2025-11-03 21:21:00 신고

▲ 뮤지컬 <매드 해터> 공연 모습 / 홍컴퍼니 제공


뮤지컬 <매드 해터>는 (모자에) 미친 모자장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런던에 사는 14살 소년 노아는 드디어 하루 12시간 노동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는 한 모자 공장에 취업한다. 기계처럼 일해야 하는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그는 사장한테 매일 오후 4시에 10분씩 휴식 시간을 달라고 요구한다.

1주일 후, 노아의 예상처럼 생산량이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다쳐서 나가는 돈이 줄었다는 이유로 사장이 계속 이 제도를 유지한다.

한편, 펠트(모직이나 털을 압축해서 만든 부드럽고 두꺼운 천)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은 노아의 바람과 달리 계속 기술 전수를 받지 못해 노아가 낙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홀로 모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장 아들 조슬린을 만나게 된다.

노아와 조슬린은 친구가 되고, 갑자기 펠트를 만드는 담당자가 그만두자 조슬린이 그 원인을 조사한다.

조슬린은 펠트 제작 과정에서 수은 증기가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건강이 악화된다는 걸 알아낸다.

차마 아들이기에 아빠한테 말할 수 없는 조슬린을 대신해 노아가 사장한테 개선을 요구한다.

사장은 수은 증기가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게 가장 효율적인 공정이라 바꿀 의향이 없다고 말한다.

사장의 완강한 태도에 그 누구도 대들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한 노아가 해고된다.

노숙하던 노아를 찾아온 조슬린의 제안으로 둘은 사람들이 가져온 추억 깃든 물건으로 맞춤 모자를 만들어준다.

사업이 잘되자, 예전 사장이 노아를 찾아와 거액을 줄 테니 사업을 접으라고 꼬시지만, 실패한다.

평소 특정 디자인의 모자를 통해 신분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을 양산해 돈을 벌던 그였기에, 누구나 쓸 수 있는 모자를 만드는 노아가 꼴 보기 싫어 공권력을 동원해 방해한다.

지난달 26일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개정됐다. 1923년 처음 ‘노동절’이 제정된 후, 1963년 ‘근로자의 날’로 명칭이 바뀐 지 62년 만에 원래의 명칭을 되찾았다.

근로(勤勞)란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뜻이고, 노동(勞動)은 ‘몸을 움직여 일함’을 의미한다. ‘노동자’라는 단어가 특정 이념을 신봉하는 쪽에서 쓰는 용어같다는 이유로 색깔을 씌워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바꿨던 것이다.

그러나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근로라는 용어를 법적 용어로 사용하면서, 부지런히 일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과 노인은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법으로 규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AI 시대에 꼭 부지런히 개미처럼 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다시 ‘몸을 움직여 일함’이라는 뜻의 ‘노동’을 법적 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어떤 날은 기존에 만들어 준 홈페이지 수정하느라 실제로 10분 밖에 한 일이 없는 프로그래머는 위 기준에 따르면 ‘근로자’가 아니다. 그러나 몸을 움직여서 일했으니 엄연히 ‘노동자’임은 분명하다.

뮤지컬 <매드 해터>는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1851년 영국 런던이 배경인 탓에 이제 막 14살이 된 주인공 노아는 드디어 자기도 하루 12시간 노동이 가능해졌다며 좋아한다.

지금 같으면 미성년자인 10대 소년이 하루 12시간이나 일하는 것은 심각한 학대일 수 있으나, 19세기 중반이 배경인지라 아마도 일하는 시간이 길면 임금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에 기뻐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루 12시간을 휴식 시간도 없이 일하자 너무 지친 노아가 사장한테 하루 10분의 휴식 시간을 달라고 요구한다.

노동자들이 10분의 휴식을 취하면 생산성이 더 높아질 것이니 1주일만 테스트 해 보자고 제안한다.

고작 10분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치는 사람이 적어져서 회사에서 치료비 지출이 줄었다는 사실에 사장이 좋아한다.

이 역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19세기 중반의 이야기다.

이렇듯 지금으로부터 오래전인 19세기 중반의 이야기를 통해 왜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 제대로 된 노동환경 조성을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게 한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4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노동하다가 죽는 노동자가 속출하고 있다.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가, 빵을 만들다가, 새벽 배송을 하다가 죽는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 것인데, 일하다가 죽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21세기의 노동환경이나 19세기의 노동환경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단지 제도가 보완 됐을 뿐, 퍽퍽한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차원에서 뮤지컬 <매드 해터>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내년 1월 18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2관에서 볼 수 있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ceo@

Copyright ⓒ 디컬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