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꼭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어야 하나요.?”
한 학생의 질문이 내게 오래 남았다. 오랫동안 우리는 봉사를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하는 봉사활동의 현장은, 그런 구분이 무너지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장이 된다.
인천은 전국에서 이주민 인구 비율이 두 번째로 높은 도시다. 학교와 마을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가 들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봉사활동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이분법 속에서 진행된다. 진정한 봉사는 이런 구분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 앞에 선 인간은 응답을 요청받는다”고 했다. 봉사는 그 요청에 응답하는 윤리적 관계의 실천이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하는 봉사는 단순히 ‘노동’이나 ‘서비스’가 아니다.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고 배우는 상호문화소통(intercultural communication)의 과정이다. 예를 들어, 한 마을의 음식 나눔 행사에서 한국인 봉사자가 김치 담그는 법을 소개하고 몽골 출신 봉사자가 자신의 전통 음식 ‘보즈(만두)’를 함께 나눈다면 이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문화의 번역과 공존의 대화가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봉사자는 ‘다름’을 낯섦이 아니라 ‘배움의 자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봉사는 결국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공부’이기도 하다.
최근 시민참여형 봉사에서는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이라는 개념이 주목받는다. 이는 봉사자들이 기획—실행—평가 전 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하며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조하는 방식이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한 팀이 돼 마을 벽화를 그리거나,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지도’를 만드는 활동은 코크리에이션의 좋은 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재능과 관점이 연결되고 봉사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공동체 실험’이 된다. 이런 협력은 일회성 행사를 넘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상호문화 거버넌스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 부평자원봉사센터와 우리 연구소가 공동으로 이주민—정주민 자원봉사활동에 관한 공론장을 열어 이주민들, 봉사활동가, 행정가들이 함께 협동 봉사활동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이주민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은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공존의 윤리’를 배우는 교육적 실천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도움’보다 ‘관계’를, ‘시혜’보다 ‘대화’를 배운다. 봉사는 타인의 삶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바꾸는 일이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 걷고 말하고 웃는 순간, 봉사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이제 봉사는 ‘도움을 주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어야 한다.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봉사활동은 우리 사회가 ‘나눔의 시대’에서 ‘함께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존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그 손을 맞잡는 순간 우리는 이미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인천은 공존의 언어를 습득하는 배움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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