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강해인 기자] 특이한 성적 취향 탓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스크린에 찾아왔다.
우리는 종종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때문에 마음의 소리에 귀를 닫고는 한다. 개인적인 욕구가 있어도 사회적 지위 탓에 그걸 억누르고 가면을 쓴다. 그렇게 사회에서의 위치를 더 굳건해지고, 요구받는 행동도 많아지게 된다. 명성이 쌓이고 잃을 것이 많아질 때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베이비 걸’은 성공한 CEO의 은밀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탄탄한 커리어를 쌓은 로미(니콜 키드먼 분)에게는 특이한 성적 취향이 있었고, 남편에게서는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삶을 이어왔다. 어느 날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턴 사무엘(해리스 딕킨슨) 분이 나타나고 둘은 불륜 관계로 발전한다. 로미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가며 커리어와 가족 모두를 잃을 수 있는 위기를 맞게 된다.
‘베이비걸’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여성 리더의 숨겨온 욕망을 탐구한다. 로미는 조직의 CEO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BDSM(구속하고 지배받는 것에 관한 성적 취향) 성향이 있고, 구속당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권력 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사회적 자아와 억압받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충돌하는 탓에 로미는 불안정한 살을 살고 있다.
이 특이한 취향을 남편에게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남편은 로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때문에 그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홀로 해결하며 위태롭게 삶을 버티고 있다. 특이한 성적 취향 탓에 불만족한 삶을 지속하는 로미는 불행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불륜 역시 쉽게 동의할 수 없기에 관객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껴야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쉽게 바뀔 수 없는 취향 탓에 스스로를 억압하고, 또 선을 넘은 선택으로 서서히 붕괴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베이비걸’은 에로틱한 분위기로 끌고 간다. 도발적인 이미지를 전시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CEO와 인턴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장면에서는 묘한 쾌감을 전하기도 한다. 동시에 ‘베이비걸’은 스릴러적인 색채도 갖고 있다. 로미가 점점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될 때면,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긴장감도 함께 높아져 쉽게 눈을 뗄 수가 없다.
‘베이비걸’은 로미의 딜레마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하며 사회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을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하게 한다.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주는 것 같아 처연함을 느끼게 하는 지점도 있다. 후반부 같은 여성에게 로미가 강요받는 역할을 볼 때면 그녀의 삶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로미를 향한 비애감은 더 커진다.
혹은, 이 영화를 로미가 자신의 벽을 깨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해방의 서사로 풀어볼 수도 있다. 사회적 명성이 아닌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로미는 마지막엔 조금 더 만족한 얼굴로 서 있다. BDSM이라는 성향을 니콜 키드먼을 통해 대중에게 선보이고, 많은 이야기를 오갈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니콜 키드먼은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차가운 모습과 욕망 앞에 솔직한 인간적인 모습을 동시에 연기해 냈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게산적인 인물로 보이던 로미가 감춰온 얼굴을 드러내며 사무엘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은 ‘베이비걸’의 모든 것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다. 1980년대부터 탄탄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할리우드의 스타로 자리 잡은 니콜 키드먼과 CEO인 로미가 오버랩되며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는 순간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베이비걸’은 로미의 성적 취향이 있는 자리에 우리가 평소 발현할 수 없는 욕망을 대입해 봐도 좋을 이야기다. 우리는 무엇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베이비걸’에서 우리의 내면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메가박스중앙㈜, ㈜올랄라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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