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조조] 소설 연재 안내
본 소설은 현 정세의 사건들을 조조, 유비, 손권 등의 인물과 탁류파, 청류파 등의 가상 정치 세력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팩션(Faction)물입니다.
서라, 짐짓 '대의를 앞세우나' 실은 사사로운 이익과 권력을 좇는 자들을 탁류파(濁流派)라 칭하고, 그 반대편에서 '청명한 정치를 부르짖으나' 실은 권문세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을 청류파(淸流派)라 부르노라. 현재 탁류파는 여당인 민주당, 청류파는 야당인 국민의힘이니라.
조조(曹操)는 탁류파의 우두머리이자 대선을 통하여 대권을 잡은 당대 제일의 웅걸이었다. 탁류파의 정신적 지주로는 선대 제후인 유비(劉備, 문재인 전 대통령)가 있었고, 조조의 대적이자 청류파가 밀던 인물은 곧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권(孫權, 윤석열 전 대통령)이었다.
성남벌, 배임의 굴레와 유동규의 최후
“하늘이 조씨(曹氏)를 돕지 않는 것인가!”
탁류파의 영웅 조조(이재명)는 황궁 북쪽 별궁의 깊은 처소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심복이자 성남군(성남시)의 주요 계책을 관장했던 동주(東州)의 모사 유동규와 그 아래 화천대유의 김만배 등 일당 다섯 명이 사법부의 명망 높은 관리들 앞에서 모두 징역의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비보가 전해진 직후였다.
4년여에 걸친 대장동의 풍파는 마침내 사법의 칼날 아래에서 일단락되었다. 법원은 이 대규모 개척 사업을 “장기간 금품을 매개로 결탁하여 벌인 일련의 부패범죄”라 규정하며, 공공의 이익이 아닌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공금 유용죄'의 근본적인 죄업을 확정했다.
조조는 고개를 들었다. 탁류파는 끊임없이 이 사업이 "성남의 백성에게 5000억의 이익을 환수한 모범적 공공 사업"이었다고 역설했으나, 법원의 판결은 그 주장 자체를 임무 위배 행위의 굴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공공의 재산에 손해를 끼칠 '위험'을 초래한 것만으로도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사법부의 논리는, 조조가 최종 결재권자로서 사업 협약에 서명한 행위가 곧 죄업의 필수 단계였음을 암시했다.
“유동규를 단순한 하급 관리가 아닌, 성남군 수뇌부의 주요 결정을 조율하는 중간 관리자로 보았다 하니…”
조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는 검찰이 조조를 공동정범으로 몰아붙이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기능적 행위 지배'의 고리를 사법부가 직접 만들어준 셈이었다. 유동규의 일거수일투족이 결국 최고 수뇌부의 의지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는 법리적 연결고리가 완성된 것이다. 비록 유동규가 옥고의 위협을 무릅쓰고 조조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을지라도, 그 신빙성이 인정되었다는 점 또한 탁류파에게는 가혹한 현실이었다.
공모의 칼날, 428억 금궤의 행방
법원의 판결이 객관적 요건을 확립했다면, 이제 사법의 초점은 조조의 '공동가공의 의사' 즉 주관적 요건을 입증하는 데 모아졌다. 이것이 바로 조조의 심복이 공금 유용을 모의하는 것을 그가 단순히 묵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적인 이익을 약속받았는지 를 밝혀낼 최후의 검(劍)이었다.
“문약(文若)이라면 이 위기를 어찌 헤쳐나갈꼬…”
조조는 옛 책략가들의 지혜를 떠올렸다. 검찰이 조조의 심장에 겨누는 가장 날카로운 창은 화천대유 김만배의 몫인 428억 금궤 약속 의혹이었다. 만약 조조가 이 막대한 금궤의 절반을 약속받았음이 입증된다면, 이는 곧 공공의 이익을 해치고 사익을 추구하려 했다는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터였다.
유비(문재인)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아 대권을 거머쥔 조조. 그는 이제 헌법 제84조, 즉 “재임 중 소추 불가의 칙령” 이라는 황제의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대장동 재판은 물론, 다른 모든 사법 리스크가 임기 후로 '추후 지정'되어 잠시나마 법의 심판으로부터 유예된 상태였다.
하지만 탁류파의 책사들은 이 '동결된 리스크'를 두고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는 사법적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5년이라는 임기 내내 조조의 정치적 명성과 정당성을 깎아내릴 시한폭탄과 같았다.
손권의 그림자와 비상하는 칼
조조에게는 대장동의 굴레 외에도 또 다른 치명적인 위협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공직선거법의 형벌'이었다.
“군주(君主)가 선거에서 허위 사실을 공표하여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면, 그 죄는 역적의 죄에 비견할 만하다!”
청류파의 기수 손권(윤석열)을 필두로 한 반대 세력은 조조가 과거 공직선거법 위반 1심에서 이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 을 선고받았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공직선거법의 율법은 가혹하여,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라도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즉시 공직이 상실되고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대장동 사건이 임기 후에나 조조의 목을 죌 수 있다면, 이 공직선거법 사건은 당장이라도 조조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수 있는 비상하는 칼이었다. 조조가 대장동의 방패 뒤에 숨어 임기를 마치려 하더라도, 또 다른 사법의 칼날이 먼저 조조를 겨눌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법의 숙명과 정치적 운명의 교차점에 선 조조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탁류파가 굳게 믿었던 '공공 환수'라는 방어 논리는 하급 법원에서 이미 무너졌다. 이제 조조를 지켜줄 것은 오직 '428억 금궤의 약속'을 몰랐다는 주관적 부인의 방패와, 임기 내내 유지될 '소추 불가의 칙령'뿐이었다.
그러나 야당인 청류파는 1심 판결을 바탕으로 조조의 중대한 법률 위반을 주장하며 탄핵소추 논의의 불씨 를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록 재적 의원 3분의 2라는 정치적 난관이 가로막고 있으나, 일단 법원이 '부패 범죄'의 근본을 인정했기에, 조조의 정치적 정당성은 임기 내내 사법의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성남벌의 풍운은 멈추지 않았으며, 탁류의 영웅 조조는 사법의 덫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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