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혁신형 제약사 개편, '리베이트 족쇄'만 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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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혁신형 제약사 개편, '리베이트 족쇄'만 푸나

연합뉴스 2025-11-01 06:01: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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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R&D 활성화" 환영 vs 여론 "윤리경영 후퇴" 우려

'혁신'과 '윤리' 두 마리 토끼 잡을 정교한 정책 설계 절실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제공]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정부가 10여년간 유지돼 온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핵심은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될 경우 인증을 즉시 취소하던 '원스트라이크 아웃'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다.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하는 기업들의 '과도한 족쇄'를 풀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업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신약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해묵은 과거'의 리베이트 이력 탓에 장기적인 R&D 활동이 위축된다는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정부는 '즉시 퇴출' 대신 행정처분 횟수나 금액을 점수화해 관리하는 '점수제' 전환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 리베이트 이력으로 인증이 취소됐던 일부 대형 제약사들도 재도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개편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제약업계의 고질적인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하고 윤리경영을 확립하자는 제도의 본래 취지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이 개편안이 자칫 '리베이트 면죄부'로 악용될 가능성이다. 만약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로 벌점을 받더라도, R&D 투자 실적이나 다른 항목에서 점수를 더 얻어 이를 상쇄할 수 있는 '꼼수'가 가능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결국 시장에 '리베이트는 계속하되, 다른 스펙만 잘 쌓으면 된다'는 최악의 신호를 주는 셈이다.

더욱이 '타이밍'이 참 미묘하다. 현 제약바이오협회장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업계의 숙원이었던 '리베이트 처벌 완화' 카드를 꺼내 들면 과연 시장과 국민들이 이를 '합리적 제도 개선'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책의 선의와는 무관하게 '전관예우를 통한 로비의 결과물'이라는 의심을 사는 순간, 정책의 신뢰도와 정당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서류' 대신 '성과' 중심으로 평가를 바꾸고 다국적사 트랙을 신설하는 등 다른 개선안의 빛마저 바래게 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물론 리베이트 적발의 '안 걸리면 비용(C)=0% 또는 걸리면 비용=100%' 속성은 정책 설계의 딜레마다. 5년 전 중대한 리베이트 이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사이 컴플라이언스를 뜯어고치고 R&D에 막대하게 투자한 기업의 혁신 동력까지 꺾어버리는 것은 분명 '과도한 족쇄'일 수 있다.

그렇다면 '혁신 투자'도 독려하고 '윤리경영'도 잡는 묘안은 없는 것일까. '트랙의 분리'와 '처벌의 경중'을 가리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윤리경영'은 기본 자격요건으로 강화해야 한다. '혁신 성과' 트랙과 '윤리경영' 트랙을 분리하고, 리베이트 같은 불법 행위는 R&D 투자 점수로 절대 상쇄할 수 없도록 못 박아야 한다. 윤리경영 트랙에서 최소 기준을 통과한 기업만이 혁신 성과를 평가받을 자격을 얻도록 하는 '게이트 키핑'이 절실하다.

둘째, 처벌은 '경중'을 가려야 한다. 제도 개편 이후 발생하는 '새롭고 중대한' 리베이트는 다른 성과와 무관하게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시장에 '걸리면 비용=100%'라는 강력한 신호를 주어 '안 걸리면 비용=0%'의 유혹을 원천 차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문제는 '혁신 제약기업 지정 이전'의 과거 이력이다. 이를 단순히 감경해주면 '과거 세탁'의 면죄부만 주게 된다.

대안으로 R&D 성과는 통과했으나 과거 이력이 있는 기업에는 '조건부 인증' 혹은 '윤리경영 강화 유예' 제도 도입을 제안한다. 3년의 인증 기간 전체를 '집중적인 컴플라이언스 감시 기간'으로 두고, 이 기간 사소한 위반이라도 재적발되면 그 즉시 인증을 취소하는 강력한 페널티를 거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딛고 실제로 혁신에 성공한 기업에는 '갱생의 기회'를 주되, 그 기회를 남용하면 즉시 퇴출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성과' 평가는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단순히 R&D에 '돈을 얼마 썼느냐'가 아니라, '글로벌 기술이전 실적'이나 '신약 개발 성과' 같은 '진짜 성과'에 가중치를 대폭 부여해야 한다.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족쇄'는 풀되, 불법을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구멍'은 빈틈없이 막아야 한다. 업계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윤리적 명분'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이번 제도 개편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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