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최근 넷플릭스로 ‘행복 목욕탕’이라는 영화를 봤다. 나카노 료타 감독의 오리지널 각본으로, 원제는 ‘탕을 데울 만큼의 사랑’이다. 밝은 느낌의 포스터에 속아 엄마와 함께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슬퍼서 둘이 함께 울었다. 내용적인 면도 흥미로웠지만, 연출적인 요소에서도 분석할 여지가 많은 작품이었다.
우선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꽤 많다. 주요인물 네 명을 제외하고도 조연들이 입체적으로 다뤄져서 특히 마음이 갔다. 나는 여러 인물이 함께 극을 이끌어 가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라 감독이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등장시키고 보여주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보통 영화들은 초반에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관계를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전혀 다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을 친절하게 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람은 누구지? 무슨 일이 있었지? 어떤 관계일까?” 하는 궁금함을 유발한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또 장면연출을 통해서도 예상치 못한 반전을 계속 집어넣어서 관객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러한 연출은 주인공의 성장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감정이입을 깊게 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행복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을 것 같은 그 가족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후타바의 통화 씬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카메라 속 인물의 위치를 보면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읽을 수 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딸의 전화를 받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후타바의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어둡고 조용한 욕탕 안에서 주인공은 화면 밖에 있다가, 통화가 끝난 후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감정을 숨겨야 하는 상황과 내면의 깊은 슬픔이 시각적으로 표현된 장면이었다.
러닝타임 내내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나 역시 이야기를 기획하며 스토리보드를 짤 때,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컷을 추가하다 보면 전체가 늘어지고, 너무 설명적으로 느껴져 관객의 감상을 방해하는 문제를 종종 겪는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친절한 설명이 꼭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인물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그 변화의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관객이 그 변화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이다.
가상의 인물을 현실적인 사람처럼 느끼게 하려다 보면, 우리는 ‘개연성’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도 때로는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이유 없이 변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런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진짜 인간적인 매력 아닐까. 내 캐릭터에게도 그런 생생함이 빠져 있던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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