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그리고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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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그리고 ‘쉼’

독서신문 2025-10-31 06:00:00 신고

인간은 누구나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구체적인 목적지가 정해진 것도, 떠나야 할 당위성이 주어진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왜일까? 수백만 년 인간의 DNA에 각인된 생존을 위한 이동의 산물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간은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떠나고 싶다.

아니, 떠나야겠다.

비가 오지 않아도 젖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곳,

슬픈 영화를 보지 않아도 눈물이 나는 곳,

피곤하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는 곳,

그런 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_(22~23쪽) 『당신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요한가요』

그렇다면 어느 날 문득 인간에게 떠나야 할 이유와 목적이 생긴다면?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떠남의 길 위에서 우연이라도 잠시 ‘긴 호흡’을 할 수 있다면 더더욱 바랄 것이 없다.

현 세기의 가장 유명한 떠남의 길은 누가 뭐래도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향하는 이 길은 9세기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가장 유명한 길은 약 800km를 걷는 '프랑스 길'이다. 이 길은 프랑스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한 달 정도 걸리는데,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걸어봐야 하는 길로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다.

2024년 산티아고 순례길 방문자 수가 약 49만9천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44만6천명 정도가 순례 인증서를 받았다. 한국인도 2023년 한 해만 약 7천500~7천900명이나 방문했다. 이쯤 되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인의 순례길이고, 떠나고 싶은, 혹은 떠난 사람들의 안식처이다.

(사진-pexels)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국가나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물론 종교적 신념을 위해 걷는 사람이 가장 많지만, 그 외에도 정신적 건강을 위해, 자기 성찰을 위해 혹은 인생의 극적인 변화를 위해, 어쩌면 막연하게 행복하고 싶어서 찾기도 한다.

또한 단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거나, 이색적인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해 찾기도 한다.

이유야 어쨌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바로 ‘육체의 쉼’이다. 800Km의 길 위에 두 발로 선다는 것은 바로 끊임없는 육체의 활동을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힘들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중간에 아무런 마을이 없이 30Km 눈 내린 산길을 걸어야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을까,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벌판을 걷는 4시간 내내 청둥·번개까지 치던 그 날이 가장 힘들었을까, (···) 햇살이 너무 강해서 숨이 막힐 정도로 걷기 힘들 때가 그랬을까...” _(177쪽) 『당신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요한가요』

하지만 육체의 활동은 때론 ‘마음의 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마음에 써야 할 힘이 모두 육체에 쓰이지 때문이다. 걷고 또 걷는 반복된 육체의 애씀에서 정신은 비로소 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지만, 어쩌면 모두가 이 ‘마음의 쉼’을 찾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기술과 제도의 비약적 발전으로 오늘의 현대인은 육체의 활동에서 크게 해방됐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의 고통은 더욱 커졌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대표적인 마음의 고통인 우울감은 2024년 40.2% 달했다. 심각한 스트레스 또한 46.3%에 달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는 우리나라에만 국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pexels)

잠시 눈을 감고 자문해 보라. ‘온전한 마음의 쉼은 언제였나?’ 그 시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어쩌면 떠나야 할 시간이다.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여전히 산재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로... 그 이상의 케렌시아(안식처)로...

나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고 싶었던 때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곧바로 떠날 수가 없었다. 하던 일들을 쉽게 멈출 수 없었고,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간 내 삶이 행복하지 않겠다 싶었던 어느 날, 내가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을 모조리 중단한 채 곧바로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는 것을 결정했다. _(175쪽) 『당신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필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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