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마치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주는 작품이 있다.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 그랬다.
첫 화부터 계속 숨죽이고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주인공 집에 경찰이 들이 닥치면서 경찰서로 가는 그 모든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이 드라마의 촬영 방식이 굉장히 화제가 되었는데, 익히 알고 있듯이 전부 원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약 60분의 분량을 끊지 않고 촬영하기 때문에 촬영장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카메라맨이 직접 카메라를 릴레이식으로 넘겨받거나 드론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2주간의 리허설 기간을 갖고, 1주일 동안 성공 테이크가 나올 때까지 최소 10번 이상의 반복 촬영을 하는 굉장히 고되고 비경제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영화의 몰입도가 정말 높았다. 기존의 OTT 드라마의 호흡과는 정말 다른 방식의 전략이었다. 다른 드라마 시리즈의 경우 1화에서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 흥미를 유발하고, 화면 전환이 거의 5초마다 바뀌며 전개가 빠르게 이뤄지는데, 소년의 시간은 완전히 정반대다.
1화에서는 그 어떤 사건의 전말도 알려주지 않은 채 주인공의 체포 과정만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원테이크이기 때문에 화면 전환이 거의 없이 카메라 감독을 따라서 주인공이 겪게 되는 경험을 함께 체험한다. 그런데도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물론 어쩌다 이 어린 소년이 경찰에 체포되었는지 그게 너무 궁금해서 다음 화를 보기도 하지만, 매 화마다 화자가 바뀐다는 점도 극의 전환점이 된다. 때로는 소년이, 혹은 담당 경찰관이, 또는 소년의 아버지가 이야기의 화자가 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소년을 둘러싼 모든 공동체를 보여주고, 그들의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시청자에게 은은하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들이 2주 동안 리허설을 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반복된 리허설 과정을 통해 대사를 몸에 익혀 자동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이런 과정은 사실 영상 작업보다는 연극 같은 무대예술 분야에서 주로 쓰이는 방식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나로 하여금 영상 너머의 공간으로 들어가 그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몰입감을 준다. 마치 소극장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화려한 스케일이나 세계관이 아니어도 오로지 이야기와 사람만으로 이런 몰입감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작품이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화려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날이 갈수록 쉬워지고 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창작자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기술적인 것에만 가치를 집중하는 것이 때로는 우려가 된다.
그래서 이렇게 온전히 사람만 줄 수 있는 아우라가 과정부터 가득 담긴 작품을 만났을 때 ‘역시…’ 하고 감탄하며, 한편으로는 안심하기도 한다.
큰 세계관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와 아름다운 비주얼을 선사하는 콘텐츠도 매우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서로 교감하고, 호흡을 맞추고, 함께 동선을 맞추는, 너무나 비효율적이어서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작품이 소년의 시간 이후로도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간과 기술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치를 더 공고히 하며 상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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