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연극 '술 취한 사람들'은 인간 정신의 도취 상태와 그로 인해 드러나는 삶의 기묘한 풍경을 탐험하는 작품이다. 러시아 작가 이반 비리파예프의 2012년 작품을 국내에서 처음 소개하는 이번 공연은 퍼포먼스온의 독창적 무대미학과 완벽히 맞물린다.
비리파예프의 작품 세계는 흔히 '에피소드의 몽타주'라 불리며, 전통적 서사 구조를 거부한다. '술 취한 사람들' 역시 단일한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네 개의 에피소드가 서로 미묘하게 연결되며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같은 도시의 여러 인물들의 삶을 따라간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환각적 부유 속에서 삶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체험하게 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술 취한 남자 구스타프는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마르타의 사랑 고백으로 삶의 진실을 발견한다. 그의 아내 로라는 경악하며 자리를 떠나지만, 구스타프는 순간적으로 '사랑의 행성'을 만난 듯한 감격을 느낀다. 이 장면은 도취 상태 속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극단을 여실히 보여준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총각파티를 즐기던 네 명의 남자가 길거리에서 갑작스러운 결혼식을 치른다. 날이 밝으면 결혼할 막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장면은 현실과 비현실, 계획과 충동 사이의 긴장을 극대화하며 관객에게 웃음과 동시에 몰입감을 준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부부와 오늘 결혼한 다른 부부가 서로 만나 사랑과 거짓,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논한다. 이 장면은 '신과 함께'라는 부제처럼, 인간의 선택과 도덕, 신의 존재에 대한 사유를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제시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만취한 남자 마르크가 길거리에서 창녀 로자를 만나 자신의 두려움과 인생 고민을 쏟아낸다. 그는 신에게 모든 것을 돌려받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외치며, 인간 존재와 신의 관계를 극단적 상황으로 압축한다. 이 장면은 극의 절정으로,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적 울림을 선사한다.
제작사 퍼포먼스온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배우들의 서사극적 게스투스와 노래, 표현주의적 몸짓을 통해 인물들을 '설치'한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인형처럼 움직이며 동시에 중얼대듯 노래한다. 이 도취적 언어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순간적 깨달음을 동시에 드러낸다.
남상식 연출과 권영호 안무, 최종원 음악감독의 협업은 이번 공연의 핵심이다. 남상식은 텍스트와 형식 실험을 꾸준히 이어온 연출가로, 비리파예프의 텍스트를 독창적 무대언어로 풀어냈다. 권영호의 동작 언어와 최종원의 음악적 상상력은 배우들의 몸과 공간, 소리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며 관객을 새로운 감각적 체험으로 안내한다.
퍼포먼스온은 2014년 이후 노래극과 수행적 무대 실험을 결합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연극 언어를 구축해왔다. '술 취한 사람들'은 그 장기적 실험의 정점으로, 인간 존재와 신, 도취와 현실 사이의 긴장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관객은 단순 관람을 넘어, 인간 정신의 깊이와 순간적 통찰을 경험하게 된다.
도취와 초현실, 인간과 신의 관계를 탐험하는 연극 '술 취한 사람들'은 현대 연극의 실험적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관객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길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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