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9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한 창작 뮤지컬 '판'이 2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는다. 이전 공연에서 선보였던 탄탄한 서사와 신명나는 음악, 그리고 날카로운 풍자는 이번 시즌에도 새로운 캐스트와의 시너지로 한층 풍부한 무대를 예고한다.
'판'은 양반가 도련님 달수가 희대의 전기수 호태를 만나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매설방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물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조선 사회의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극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풍자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웃음과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무대 구성 또한 인상적이다.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합, 꼭두각시 놀음, 인형극, 가면극 등 다채로운 연희 장치를 활용해 시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특히, 이야기가 전개되는 매설방 장면은 관객이 실제 이야기 속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주며, 뮤지컬 장르의 한계를 넘어선 창의적 무대로 평가된다.
캐릭터 해석 역시 '판'의 큰 강점이다. 달수 역의 문성일과 현석준은 각각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와 성장에 집중하며 무대를 장악하고, 새롭게 합류한 윤은오는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난 새로운 달수를 선보인다. 호태 역의 김지훈과 김대곤은 관객을 단숨에 매혹시키는 존재감으로, 전기수의 카리스마와 이야기꾼으로서의 매력을 완벽히 구현한다.
춘섬, 이덕, 그리고 매설방의 주변 인물들은 극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김아영과 박은미가 연기하는 춘섬은 단순한 이야기방 주인을 넘어, 시대를 읽는 눈과 유머 감각을 겸비한 인물로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박란주와 박세미가 맡은 이덕 또한 청아한 음색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전기수의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극의 다층적 재미는 단순한 캐릭터간 상호작용에만 있지 않다. 다양한 조연들과 다중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활약은 극에 예측 불가능한 재미를 더한다. 김효성과 이강혁, 임소라와 이재희 등 배우들은 여러 역할을 자유롭게 오가며, 관객이 보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연출과 창작진의 섬세함 역시 눈에 띈다. 박준영 연출과 정은영 작가, 박윤솔 음악감독, 이현정 안무감독이 다시 의기투합하여, 전작보다 한층 세밀하고 정교한 연출을 완성했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라인과 자연스러운 음악, 그리고 신명나는 안무는 각 장면의 감정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판'의 또 다른 매력은 역사적 배경과 현대적 풍자의 조화다. 조선 시대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사회의 부조리와 오늘날의 사회적 이슈를 교묘하게 연결하여 관객에게 '지금 여기'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웃음과 풍자 속에서도 시대를 읽는 통찰력이 엿보이는 이유다.
달수와 호태, 매설방 인물들을 통해 '판'은 결국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기수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과정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극적 장치로서 강력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12월 23일부터 동덕여자대학교 코튼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판'은, 관객에게 공연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전통 연희와 현대 뮤지컬의 결합,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유머러스한 풍자,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이야기의 힘이 어우러져 조선의 이야기꾼들과 함께하는 신명나는 한 판을 완성한다. 이번 시즌 '판'은 과거와 오늘을 잇는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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