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무대 위 한 음의 떨림이 시간의 결을 바꾼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은 이제 ‘어린 천재’라는 수식어를 넘어, 음악 속 사유와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오는 11월 15일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은 그 변화의 순간을 증명하는 무대다. ‘THE NEXT’ 시리즈의 세 번째 주인공으로 초청된 김서현은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 20세기 음악의 깊은 세계를 탐색하며, 청중을 소리의 내면으로 이끈다.
김서현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 확고한 존재감을 갖는다. 2021년 이자이 국제음악콩쿠르와 레오니드 코간 국제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을 거머쥐며 일찍이 가능성을 드러냈고, 2022년 토머스 앤 이본 쿠퍼 국제콩쿠르에서는 역대 최연소 우승자로 기록됐다. 이듬해 스위스 티보르 버르거 국제콩쿠르에서도 같은 성과를 이어가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화려한 이력 뒤에는 수많은 시간의 집중과 고요한 탐구가 있었다. 김서현의 연주는 단순한 기교의 완벽함에 머물지 않고, 음표 하나하나에 숨결과 정서를 불어넣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김서현은 헝가리 패논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을 비롯해, 통영국제음악제와 유럽의 시옹, 크슈타트 메뉴힌 페스티벌 등 주요 무대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쌓았다. 기돈 크레머, 미클로스 페레니 등 세계적 거장과의 실내악 무대는 김서현에게 또 다른 음악적 언어를 체득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 경험들은 이번 리사이틀의 해석 속에서도 고스란히 스며 있다.
공연 프로그램은 드뷔시, 프로코피예프, 버르토크로 이어지는 20세기 소나타의 궤적을 따라간다.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는 인상주의의 서정과 미묘한 음색의 흐름을 통해 섬세한 감정의 결을 드러내며, 무대와 객석 사이에 은은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어지는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D장조, Op.94bis’는 명료한 구조 안에서 시적 정서를 품고 있으며, 단단한 리듬 속에서도 고요한 감정이 깊게 흐른다. 마지막으로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Sz.75’는 원초적 에너지와 리듬의 역동이 맞물리며, 대담한 해석과 정교한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김서현은 이 세 곡을 통해 20세기 음악의 다층적 감정과 구조, 그리고 인간적 긴장을 입체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정교한 구조적 이해와 풍부한 감정 표현으로 김서현과 호흡을 맞춘다. 두 연주자는 음을 맞추는 단계를 넘어, 작품 속 감정과 사유를 공유하며 음악적 대화를 완성한다. 그들의 앙상블은 이성적 구조와 감성적 여백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 빛난다.
이번 공연은 한 예술가가 성장의 궤도를 넘어 자신만의 언어로 음악을 새롭게 쓰는 과정이자 선언에 가깝다. 드뷔시의 서정, 프로코피예프의 명료함, 버르토크의 원초적 긴장감 속에서 김서현은 감각과 사유, 기교와 감정의 경계를 넘나든다. 김서현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청중에게 아름다움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것은 한 예술가가 시간과 자신을 통과해 도달한 성숙의 순간이며, 음악이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깊이 비출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김서현은 이제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목소리로, 음악이 사유하는 방식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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