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연극 '기도문', 침묵 속에서 울리는 삶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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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N] 연극 '기도문', 침묵 속에서 울리는 삶의 결

뉴스컬처 2025-10-28 11:04:39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어느 가을 저녁, 극장은 소리 없는 기도로 가득 찼다. 두 여인의 목소리와 한 대의 피아노만이 공간을 채우며, 관객은 그 안에서 삶의 조각들을 조용히 맞이한다. 연극 '기도문'은 침묵과 울림 속에서 인간의 상실과 연대를 탐문하는 작품이다.

연극 '기도문'. 사진=키위아트
연극 '기도문'. 사진=키위아트

'기도문'은 남과 북, 서로 다른 현실 속에 살던 두 여인이 같은 피아노 독주회장에 들어서지만 한 번도 만나지 않는 구조를 가진다. 관객은 두 개의 독립된 삶을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흐르는 감정의 강이 결국 하나로 모이는 경험을 한다.

임강희와 강애심은 북한과 남한 출신의 여인을 연기하며,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폭발적으로 내면을 드러낸다. 배우들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짜는 실처럼 정교하게 얽히며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연출은 장치에 의존하지 않는다. 빛과 침묵, 음악만으로 장면의 긴장과 여운을 만들어내며, 극장의 공기는 관객의 호흡과 함께 미세하게 떨린다. 작은 움직임과 말의 쉼표가 곧 무대 위의 시가 된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두 여인의 노래는 극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노래는 배경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상처, 기억을 동시에 울리는 매개체가 된다.

마지막 장면, 피아노로 연주되는 슈베르트 '기도문(Litanei)'은 공연 내내 쌓인 감정을 폭발시키며 극장을 한순간에 하나의 공명체로 만든다.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한 음 한 음마다 이야기와 기도가 스며 있다. 음악과 목소리가 교차하는 순간, 관객은 지켜보는 존재가 아니라 극 속 감정의 일부가 된다.

연극 '기도문' 공연모습. 사진=키위아트
연극 '기도문' 공연모습. 사진=키위아트

조성우 연출가는 '기도문'을 '남과 북의 현실, 사회적 참사를 넘어 한 인간의 목소리가 어떻게 타인의 삶에 닿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정의한다. 무대 위에서 그 정의는 고스란히 관객의 심장으로 전달된다.

연극은 정치적 메시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상실과 위로, 인간 존재의 섬세한 결을 목소리와 침묵, 빛과 음악으로 풀어낸다. 관객은 두 여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짧지만 강렬한 정서적 여정을 경험한다.

'기도문'은 작은 극장 안에서 인간의 내면과 공감의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이다. 100분의 공연이지만 남는 여운은 길게 이어진다. 배우와 음악, 관객이 함께 만든 공감의 강물이 오래도록 마음에 흐른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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