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윤가은 감독은 언제나 아이와 세계 사이의 틈을 응시해왔다. 영화 '우리들'이 ‘친구’라는 관계의 균열을, '우리집'이 ‘가족’이라는 불안정한 울타리를 들여다봤다면, '세계의 주인'은 두 세계를 관통하는 감정의 진폭을 ‘자아’라는 축으로 확장시킨다. 그 중심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18세 여고생 이주인이 있다.
이주인은 명랑하고, 뻔뻔하며, 짓궂고, 그러나 쉽게 읽히지 않는 인물이다. 학교에선 분위기 메이커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눈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학생이기도 하다. ‘주인’이라는 이름처럼, 그녀는 자신의 세계를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 통제를 비웃듯 흔들린다.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거부한 순간, 그녀는 공동체의 질서에서 벗어나며 낙인과 고립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리고 ‘익명의 쪽지’는 그 균열을 가시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윤 감독은 이주인을 ‘청소년의 초상’으로 그리지 않았다. 감독은 주인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자아의 문제를 탐구한다. 친구, 가족, 교사, 그리고 익명의 목소리들이 각자의 ‘주인’을 정의하려 할 때,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실체를 잃는다. 영화 후반부의 ‘감정의 폭발’은 그래서 분노라기보다, 자신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윤 감독의 연출은 이번에도 절제되어 있지만, 이전보다 한층 더 불안하고 실험적이다. 학교 복도에 맴도는 긴장감, 집 안을 가득 메운 침묵, 그리고 ‘쪽지’가 등장하는 순간의 미세한 공기의 떨림까지. 감독은 사소한 일상의 틈에서 사회적 폭력을 감지하는 능력을 다시금 증명한다.
결국, '세계의 주인'은 ‘세계의 주인’이 되려는 한 소녀가 오히려 세계의 타자로 내몰리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의 정치학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주인은 우리 모두가 한때 지나온 경계 위에 서 있다.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지만, 그 인정 없이는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나이.
그렇기에, 이주인은 명랑한 친구도, 뻔뻔한 딸도, 짓궂은 여친도 아닌, “알다가도 모르겠는 18세”, 즉 성장과 존재의 모순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인물이다. 이주인은 결국 세계의 주인이 되지 못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는 주체’로 남는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영화는 완성된다.
윤가은 감독은 '세계의 주인'을 통해 관계의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틈을 억지로 메우기보다, 있는 그대로 응시하며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감정의 미세한 진동을 담담히 기록한다.‘세계의 주인’은 인물들의 성장 서사가 아닌 이해받지 못함을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윤가은이 세상과 소녀를 동시에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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