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옴니버스 연극 '터미널', 일상의 정거장에서 만나는 위로의 순간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컬처N] 옴니버스 연극 '터미널', 일상의 정거장에서 만나는 위로의 순간

뉴스컬처 2025-10-27 13:51: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도시의 소음과 사람들의 발걸음이 쉼 없이 이어지는 지점에서, 우리는 종종 잠시 멈춰 서서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제작소 샐러리의 옴니버스 연극 ‘터미널’은 바로 그런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일상의 정거장을 무대로, 서로 다른 삶이 잠시 교차하는 순간을 담아낸 작품은 관객에게 스쳐가는 시간 속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세 개의 단막극으로 구성된 ‘터미널’은 인간 내면의 감정과 관계, 상실과 위로를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탐구한다.

연극 '터미널' 포스터. 사진=제작소 샐러리
연극 '터미널' 포스터. 사진=제작소 샐러리

첫 번째 단막 ‘펭귄’은 남극기지를 배경으로 한다. 조정일 작, 이유담 연출의 작품에서 쉐프 석기와 생물학자 미래는 과거 연극을 전공했던 선후배 사이로, 세상의 끝에서 잃어버린 꿈과 삶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하얀 눈과 빙하로 뒤덮인 극한의 환경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들의 내적 고립과 동시에 희망을 상징한다. 관객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지만 쉽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꿈을 떠올리게 하고, 잃어버린 꿈이 반드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은은하게 전달한다. 무대 위 배우들의 미묘한 표정과 몸짓은 단어로 다 표현되지 않는 내면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눈앞에 펼쳐진 극한의 풍경과 맞물려 감정적 몰입을 유도한다.

두 번째 단막 ‘Love so sweet’는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와 홀로 서는 과정에 집중한다. 김태형 작, 이유담 연출의 이 단막에서 주인공 오귀진은 가장 사랑받고 싶었던 만큼,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서 받은 상처도 깊다. 병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자신처럼 살뜰히 보살핀 남동생과도 잠시 이별한 뒤, 그녀는 조심스레 스스로를 위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작품은 이러한 과정을 단순히 극적 사건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걸음 하나하나에 감정적 울림을 실어 관객이 내면의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한다. 상처와 회복, 사랑과 이별의 순간이 담담한 톤으로 전개되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용기와 자기 보듬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오귀진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기 내면 속 작지만 단단한 용기들을 발견하게 된다.

세 번째 단막 ‘거짓말’은 서울역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스쳐가는 두 남녀의 하루 단 한 시간의 만남을 그린다. 김현우 작, 이유담 연출의 이 단막은 현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은유적으로 탐구한다. 두 인물은 각자의 삶 속 고단함과 책임에서 잠시 벗어나 서로에게 위로와 연민을 주고받는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스쳐가는 인연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신기루처럼 덧없지만, 그 안에서 오롯이 나눈 공감은 확실히 진실하다. 연출과 배우들의 섬세한 호흡은 스쳐가는 순간을 정교하게 포착하며, 관객이 익숙한 공간 속에서 낯설게 마주한 감정적 경험을 공유하도록 한다.

연극 '터미널'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각 단막의 정서적 밀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다. 강인성, 김민규, 송승규, 이민지, 장은비, 하지운 배우들은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구현하며, 극 전체에 통일된 리듬과 감정적 연속성을 부여한다.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호흡과 톤의 변화는 단순히 대사를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인물의 심리적 변화와 감정의 미묘한 결을 관객에게 실감 나게 전달한다. 이유담 연출의 디테일한 연출과 공간 활용 역시 극적 몰입을 강화하며, 관객이 작품 속 순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돕는다.

‘터미널’은 사건 중심의 극이 아니라, 스쳐가는 삶의 단편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감정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잃어버린 꿈, 상처로부터의 회복, 스쳐간 인연 속 위로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작품은 인간적 공감과 위로의 순간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전달한다. 관객은 단순히 이야기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 인물들의 감정을 매개로 자신의 삶과 감정을 다시 성찰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터미널’은 일상 속 소소한 순간에서 인간적 울림을 포착하는 연극이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출과 배우들의 호흡이 돋보이며, 작품을 통해 관객은 바쁘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잠시 숨을 고르고, 일상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새삼 느끼며 돌아갈 수 있다. '터미널'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으로서, 연극이 가진 치유적 기능과 공감적 힘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