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나는 선인이다', 리듬 속으로 뛰어든 흥부와 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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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N] '나는 선인이다', 리듬 속으로 뛰어든 흥부와 놀부

뉴스컬처 2025-10-27 10:48:59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극단 광대의 '나는 선인이다'는 한국 마당극의 전통적 해학과 현대 피지컬 시어터의 실험적 요소가 결합된 공연으로, 관객이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마당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몰입 경험을 제공한다. 무대에 들어서면 북, 징, 꽹과리로 만들어지는 장단이 관객의 몸을 울리며 공간 전체를 감싼다. 장단은 음악적 배경이 아니라 배우들의 움직임과 호흡을 안내하는 생동하는 리듬으로 작용한다. 사회자가 국악적 음색으로 극의 흐름을 안내하면, 배우들은 그 장단 위에서 몸 전체를 활용해 즉흥적이면서도 정밀한 움직임을 펼친다.

배우들의 신체 언어는 극의 중심적 체험 요소다. 팔과 다리의 회전, 몸통의 회전과 굽힘, 손끝으로 오브제를 띄우고 받치는 모든 동작이 장단과 맞물리며, 관객은 공간의 진동과 함께 체감하게 된다. 배우들의 몸과 오브제의 상호작용은 순간순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며, 빈 무대가 생생한 마당으로 변모한다.

퓨전 마당극 '나는 선인이다' 연습 현장. 사진=극단 광대
퓨전 마당극 '나는 선인이다' 연습 현장. 사진=극단 광대

오브제 활용은 작품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빈 박스, 천 조각, 나무 조각 등 단순한 물체들이 배우들의 손을 거쳐 생명을 얻고, 무대를 가로지르며 이야기의 흐름을 형성한다. 관객은 이 과정에서 오브제가 만들어내는 공간적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마치 극 속 사건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은 박스 하나가 공중에서 흔들리고 배우의 발끝이 장단에 맞춰 움직이는 순간, 무대와 관객의 경계는 흐려진다.

고전 '흥부와 놀부'를 현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한 점도 흥미롭다. 흥부와 놀부는 선악의 상징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과 생존, 정의감의 복잡한 교차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변모했다. 놀부의 과잉된 욕망과 흥부의 불완전한 정의감은 팔의 떨림, 몸통의 회전, 발끝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시각화되며, 관객은 이를 몸으로 느끼며 심리적 긴장과 사회적 모순을 체험하게 된다.

리듬과 시간감은 작품의 체험적 구조를 강화한다. 전통 마당극 장단과 현대적 퍼커션이 결합하며, 정적과 폭발적 동작 사이에서 공간 전체가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관객은 장단의 박동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조절하고, 몸이 리듬에 반응하며 공연과 자신의 체감이 교차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관객이 신체-리듬-공동체 체험이라는 연극학적 의미를 직접 체감하게 하는 장치다.

퓨전 마당극 '나는 선인이다' 연습 현장. 사진=극단 광대
퓨전 마당극 '나는 선인이다' 연습 현장. 사진=극단 광대

흥부와 놀부의 현대적 재해석은 이야기 변주를 넘어 사회적·문화적 성찰을 촉진한다. ‘선이란 무엇인가, 누가 그것을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극을 관통하며, 관객은 도덕적 판단을 넘어 직접 체험을 통해 이를 고민하게 된다. 배우의 신체, 오브제의 움직임, 장단의 흐름이 결합하면서, 관객은 극 속 마당의 중심에서 동시에 숨쉬며 고민하는 위치에 놓인다.

연출을 맡은 김남우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우리가 믿고 살아온 이야기 구조 자체를 다시 바라보는 체험적 장”이라고 설명한다. 무대 위 배우들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관객의 시선과 공간 속 리듬을 의식하며 움직인다. 손끝에서 떨어지는 오브제, 발끝이 장단과 맞닿는 순간, 몸 전체로 전해지는 에너지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관객 참여형 구조는 작품의 핵심 경험이다. 보는 관람자에 그치지 않고, 극 속 마당의 일부로서 호흡과 리듬을 공유하고, 순간순간 배우들과 공간을 함께 채우는 경험이 제공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자신이 ‘마당의 동시대인’임을 인식하며, 공연의 의미와 메시지를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신체적 체험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배우별 움직임과 오브제의 상징적 활용은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높인다. 흥부는 손끝으로 천을 다루며 욕망과 인간적 결핍을 시각화하고, 놀부는 박스를 던지고 받치는 과정에서 과잉된 욕망과 집착을 드러낸다. 순간순간 바닥과 공중을 오가는 오브제와 배우의 몸짓은 관객의 시선을 끌 뿐 아니라, 공간 전체의 에너지를 변화시키며 극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장단의 변화는 극의 흐름과 관객 체험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빠른 장단에서는 배우들의 몸이 폭발적으로 움직이며 긴장과 에너지를 극대화하고, 느린 장단에서는 관객이 숨을 고르고 장면의 의미를 체감하게 한다. 장단과 몸짓, 오브제의 결합은 단순한 연극적 장치가 아니라, 관객과 배우, 공간이 함께 호흡하는 공동체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공간적 구성 또한 체험적 관점에서 중요하다. 빈 무대, 오브제, 배우의 움직임이 결합하여 관객은 시각적 몰입과 물리적 체험을 동시에 경험한다. 공간 속에서 배우의 움직임과 장단의 파동을 느끼며, 관객은 극 속 사건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전통 마당극의 해학과 현대적 신체 퍼포먼스, 배우-관객-오브제-리듬의 다층적 교감이 결합한 '나는 선인이다'는 현대적 마당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도다. 관객은 공간, 리듬, 몸짓, 공동체적 체험을 온전히 느끼며, 전통과 현대, 신체와 문화적 성찰이 교차하는 현장 속으로 초대된다.

퓨전 마당극 '나는 선인이다' 포스터. 사진=극단 광대
퓨전 마당극 '나는 선인이다' 포스터. 사진=극단 광대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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