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5] 와디 히탄의 기억: 태초에 예술이 태어나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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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5] 와디 히탄의 기억: 태초에 예술이 태어나다②

문화매거진 2025-10-21 18:03:19 신고

[한민광의 이집트 칼럼 #4] 와디 히탄의 기억: 태초에 예술이 태어나다①에 이어 

[문화매거진=한민광 작가] 수천만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바다는 사라지고 땅이 남았다. 그러나 그 빈 공간 위로 새로운 손길이 나타났다. 그것은 자연이 아닌, 인간의 손이었다. 그들은 바위 위에 붉은 선을 긋고, 점을 찍고, 동물과 사람의 형상을 새겼다. 그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예술, 사막의 암각화(rock art)였다.

▲ 와디 히탄 박물관에 전시된 이 벽화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예술 흔적 중 하나다. 단순한 점과 선으로 그려졌지만, 바다 생명체의 움직임과 생명의 리듬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것은 기록이 아니라, 존재와 자연이 서로 공명하던 시절의 언어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와디 히탄 박물관에 전시된 이 벽화는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예술 흔적 중 하나다. 단순한 점과 선으로 그려졌지만, 바다 생명체의 움직임과 생명의 리듬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것은 기록이 아니라, 존재와 자연이 서로 공명하던 시절의 언어였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붉은 점들이 모여 원을 이루고, 푸른 선이 그 중심을 가로지른다. 그 단순한 문양은 장식이 아니라, 의미의 탄생이었다. 그들은 아직 말을 글로 옮길 수 없었지만, 색과 형태로 감정을 남겼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언어였으며, 그림의 언어다.

첫 인류의 그림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점은 별이었고 선은 강이었으며 곡선은 생명의 순환이었다. 그림을 통해 인간은 자신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다. 그것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마음이 울리는 공명(共鳴)이었다. 이 시대의 예술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 와디 히탄 박물관에 전시된 이 벽화들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동물들의 형상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와디 히탄 박물관에 전시된 이 벽화들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동물들의 형상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벽화 속에는 기린과 코끼리, 타조, 그리고 가젤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인간과 같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사냥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동반자로서의 표현이다. 그들에게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존경의 존재였다.

그림 속 선은 놀랍도록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생명의 본질이 담겨 있다. 곡선 하나로 동물의 몸짓과 기운이 살아난다. 이 표현은 훗날 고대 이집트 벽화로 이어진다. 정면의 눈, 측면의 몸, 비례와 상징의 조합… 그 모든 형식의 뿌리가 이미 이 선사시대 암벽 위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 와디 히탄 박물관의 벽화에는 사람들이 춤추고 사냥하는 장면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와디 히탄 박물관의 벽화에는 사람들이 춤추고 사냥하는 장면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어느 벽화에는 수십 명의 인물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추고 있다. 그들의 팔과 다리는 길쭉하고, 동작은 과장되어 있다. 그 과장은 단지 표현의 미숙함이 아니라, 움직임의 본질을 포착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들은 몸으로 예술을 알고, 그림으로 그 리듬을 기록했다. 그 장면 속에는 인간의 첫 ‘공동체적 감정’이 새겨져 있다. 함께 존재한다는 환희, 그리고 그것을 남기고 싶은 본능… 그래서 그 리듬은 훗날 고대 예술의 모든 형식으로 번져나갔다. 춤, 음악, 신전 벽화, 심지어 피라미드의 건축 리듬 속에도 이 원형의 움직임이 숨어 있다. 예술은 태초부터 ‘리듬의 언어’였다.

그들은 돌가루를 갈아 색을 만들고 바위의 틈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재료는 단순했지만 표현은 생생했다. 그림은 장식이 아니라 기도였다. 그들은 그 그림을 통해 비와 풍요를 빌고, 죽은 자의 혼이 돌아오길 바랐다. 예술은 그들에게 생존의 언어였다. 그림은 그들의 ‘나도 여기에 있었다’는 선언이었다. 그 단 한 줄의 선에는 삶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예술은 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 카이로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손으로 예술을 빚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붓과 가위, 실 한 올로 세상과 대화하며 하루의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엮어낸다. 그들의 작업은 생계이자 동시에 예술이며, 도시의 숨결 그 자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 카이로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손으로 예술을 빚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붓과 가위, 실 한 올로 세상과 대화하며 하루의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엮어낸다. 그들의 작업은 생계이자 동시에 예술이며, 도시의 숨결 그 자체다 / 사진: 한민광 제공


오늘날 우리는 기술과 도구로 예술을 만든다. 하지만 그때의 사람들은 손끝으로 세상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 위에 남기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미학을 몰랐지만,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림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함의 증거였다. 그 단순한 선 하나, 점 하나가 오늘 우리에게 말한다.

“예술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 와디 히탄 박물관 내부와 외부 풍경 / 사진: 한민광 제공
▲ 와디 히탄 박물관 내부와 외부 풍경 / 사진: 한민광 제공


와디 히탄에는 두 개의 미술관이 있다. 하나는 바람과 모래가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손이 세운 것이다. 하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다른 하나는 오래된 언어로 속삭인다. 두 세계는 서로를 비춘다. 자연이 시작한 이야기를 인간이 이어 쓰는 것이다.

자연은 시간으로 그림을 그리고, 인간은 기억으로 그 위에 색을 입힌다. 그래서 이곳의 예술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는 시간의 일기’ 같다. 그렇게 와디 히탄은 우리에게 묻는 듯 하다.

“너는 어떤 흔적으로 너의 시간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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