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연출 "본질 훼손하면 안돼…원작자가 보고 행복해하길"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 기념작…내달 9일까지 공연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원작자인 이청준 선생님이 보셨다면 참 행복해하셨을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청준(1939∼2008) 작가의 단편소설 '서편제'(1976)가 북장단과 소리꾼들의 성음으로 이뤄진 소리극 '서편제; 디 오리지널(The Original)'로 재창작돼 무대에 오른다. 17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국립정동극장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서편제; 디 오리지널'은 이청준의 원작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살린 작품이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은 17일 오후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섣불리 본질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더 '오리지널'에 가까워질까 하는 생각만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등장인물에 따로 배역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소설 그대로 아비와 소녀, 사내 등으로 표현했다.
고 감독은 "이름도 없이 남도의 소리길을 떠돌았던 소설 속 인물 그 상태로 무대에 올리는 게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옛날에 어떤 소리꾼 아비와 오빠, 여동생이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비가 자신이 못 이룬 소리꾼의 꿈을 위해 딸인 소녀의 눈을 고의로 멀게 하는 원작의 설정도 그대로 따랐다. 자칫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지만, 고 감독은 이러한 설정이 작품의 본질이자 정체성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굉장히 모진 아버지라는 설정이 현시대와 맞는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며 "문학은 문학으로 허용돼야 한다. 굉장히 비정하고 폭력적이었다고 해도 캐릭터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원작에서 인물들이 길 위를 한 없이 떠도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회전하는 대형 원형무대를 설치하고 배우들이 그 위를 걷게 한 연출도 눈에 띈다. '계속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 삶과 예술의 본질을 은유하려는 의도로 만든 무대장치다. 고 감독은 "이 작품에는 인생길 또는 소리길이라는, 등장인물들이 계속 걸어야 하는 무대가 필요했다"며 "원형무대로 구현된 길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장소이자 상처가 축적되고 다시 해소되는 심리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다만 배우들이 부르는 총 22곡의 소리는 원작을 바탕으로 하되, 인물의 감정과 극적 상황에 맞게 순서를 재배열했다. 예를 들어 아비가 눈먼 소녀를 두고 죽는 장면에서는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로 이별의 아쉬움과 재회의 간절함을 표현했다. 고 감독은 "춘향이와 이도령이 이별하는 모습을 아버지와 딸에게 투영하면 관객에게 굉장히 인상적인 소리극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소리가 가진 본질만 잘 보여주면 좋은 작품이 될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극의 중심 역할을 하는 소녀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박지현 배우의 연기와 소리에도 이목이 쏠린다. 서울대 국악과에 재학 중인 박지현은 지난 2022년 전국 창작판소리경연대회서 최우수상을 받은 인재다. 특히 영화 '서편제'에 출연한 배우 오정혜의 외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닮아 작품에 몰입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지현은 "최고의 창작 제작진분들, 배우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스럽다"며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임하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외에 남원시립국악단 악장인 임현빈과 국악밴드 이날치의 안이호가 아비 역으로, 국립창극단 창악부 단원 김우정이 소녀 역으로 함께 한다.
hyun@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